네이버와 갑(GAP)

머니투데이 김준형 증권부장 2010.01.2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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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네이버와 갑(GAP)


조그만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한 기업인은 평상복으로 ‘GAP’ 브랜드를 애용한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왜 ‘갭’을 고집하느냐고 질문하면 그 사람은 ‘갭’이 아니라 ‘갑’이라고 발음을 고쳐준다.
평생 대기업이나 공무원들한테 ‘을’의 입장에서 살다보니 ‘갑’으로 살아보는게 소원이어서 ‘GAP’을 입는단다. 언론사는 ‘갑’이어서 좋겠다는 말이 꼭 뒤따른다.
이 이야기를 듣고는 속으로 나도 ‘갑’을 입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언론사가 ‘을’이 되는 대표적인 상대가 포털이다.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에는 100여개의 언론사가 기사를 제공하고 있다.
언론사라고는 하지만 네이버와의 관계에서는 ‘콘텐츠 공급자(CP)’, 쉽게 말해 하청업체에 해당한다.
유통업체가 입점 업체의 자격을 심사하고 가격을 결정하듯, 포털은 언론을 심사하고 가격을 매긴다. 옛날에는 “00신문에 났다”는 말이 논쟁을 끝내는 한방이었지만 이제는 “네이버에 떴다”가 이를 대체했다.



이런 뉴스 공급구조는 사회 여러 곳에 예상치 못했던 파장을 일으킨다.
얼마전 만난 한 증권사 홍보담당 임원은 “네이버로 인해 발생한 비용을 우리가 나눠 내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네이버와 증권사? 연결고리가 뭘까.
언론임을 자처하는 정보제공업체들이 국내 최대 포털인 네이버의 위력을 등에 엎고 증권사를 상대로 영업을 한다는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곳이라 무시하려치면 “네이버에 안 좋은 기사 떠도 좋으냐“라는 말이 십중팔구 돌아온단다.
네이버에는 공짜로 자기 콘텐츠를 밀어 넣고, 그 비용을 업체들에게 받는다는 설명이다. 물론 100여개의 뉴스 공급업체는 명목상 네이버로부터 돈을 받는다. 하지만 “넣어만 달라”며 거의 거저로 네이버에 기사를 주는 곳이 수두룩하다는건 언론계의 공공연한 상식이다.
그나마 뉴스 공급업체에 못끼는 곳들은 “검색만 되게 해달라”고 매달린다. 이런 ‘검색 제휴업체’들이 돈을 받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다보니 걸러지지 않은 정보, 조악한 '기사'들이 소비자들에게 심각한 공해가 되고 있다.

물론 종교에 사이비와 이단의 경계가 애매하듯, 언론 역시 사이비와 정도언론의 경계는 희미하다. 팩트와 주장을 혼돈하고 자기 이익에 따라 상대방을 몰아치는 건 이른바 기존 정통 언론들이 더하면 더한게 요즘 형국이다. 머니투데이도 뉴스공급업체로서 이런 비정상적인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난을 피할 길도 없다.



그렇지만 네이버(NHN (194,600원 ▲5,800 +3.07%))의 뉴스 사이트를 운영방식 개편을 앞두고, 과도한 ‘쏠림’이 낳는 부작용이 사회 구석구석에 미친다는 점을 짚어보고 싶다.

NHN은 지난해 매출액 1조2000억원에, 영업이익 4910억원, 당기순이익 3630억원을 올렸다. 지난해 4분기에도 매출액 3440억,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1480억원, 1190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릴 것으로 증시 애널리스트들은 전망하고 있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43%, 순이익률은 34%에 달한다.
네이버가 속해 있는 서비스업의 국내 평균 영업이익률(2008년 기준)이 4.5%, 순이익률이 2.9%이고 보면 NHN이 얼마나 환상적인 수익을 올리는 기업인지 알수있다.

무조건 돈 잘버는게 기업이 할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기술(IT)분야 벤처 기업들의 이익률은 훨씬 높을수도 있다. 하지만 매출액 1조원이 훌쩍 넘는 기업이 매년 40% 영업이익율을 올리고 있고, 반대편에서는 하청업계인 인터넷 콘텐츠 산업이 기형적으로 뒤틀려가는게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보고 넘어갈 시점이 됐다.


NHN이 나름대로 고민을 하고 있는걸 모르는건 아니다. '1위 기업'이기 때문에 받아야 할 화살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사회의 인프라로 자리잡은 기업이라면 좀 더 멀리 보고 오래 가는 지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청부(淸富)로 꼽히는 경주 최부자는 '재산을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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