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 태평성대를 꿈꾸십니까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인겸 더벨 대표이사 부사장 2010.01.04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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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느냐 사느냐는 생존의 낭떠러지에 섰던 게 바로 엊그제였는데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2010년 정초는 그야말로 '번화한 거리에 달빛이 연기에 은은하게 비치는' 강구연월(康衢煙月), 태평성대인 듯합니다.
 
최근 여러 성과를 놓고 보면 태평성대를 노래할 만도 합니다. 지난해 한국경제는 30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호주 폴란드와 함께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했습니다. 올해 성장률도 5%를 넘어 최고수준을 기록할 전망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무역수지 흑자는 410억달러를 기록해 사상 처음 일본을 추월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유치나 400억달러의 원자력 발전소 수출은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OECD DAC)에 가입함으로써 한국은 세계 역사상 처음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습니다.
 
이제는 나라의 격을 높이는 게 과제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강조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2010년 정초 대한민국이 놓인 상황을 '주역'에서 찾는다면 64괘 가운데 가장 좋은 괘인 태(泰)괘, 지천태(地天泰)입니다. 태평성대의 괘이지요. 하늘과 땅이 서로 교감하고 음양이 소통하는 괘며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는 괘입니다. 군자의 도는 강해지고 소인의 도는 소멸하는 괘입니다.
 
태괘에서는 맨발로 황하를 건너는 용기와 과단성을 강조합니다. 특히 자기편이 아니라고 멀리하지 말 것이며 붕당이 없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거친 것을 포용하고 중도를 행함으로써 세력을 확대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집권 초기 촛불시위로 국정수행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고 지지율이 17%대까지 떨어진 것이나, 미국발 금융위기로 한치 앞도 안보이던 1년 전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지금은 태평성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주역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서민을 포용하고 중도실용으로 선회한 정책이 크게 기여했습니다. 또 쌍용차나 철도노조 파업, 원전 수출 등에서 보여준 맨발로 강물을 건너는 과단성과 용기가 한몫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안심하긴 이릅니다. 태평성대는 순식간에 하늘과 땅이 막히는 폐색의 상황으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주역에서도 11번째 지천태 다음에 바로 오는 것이 최악의 상황인 천지비(天地否)의 괘입니다.
 
주역 태괘에서는 기울지 않는 평지는 없으며, 되돌아오지 않는 과거는 없다며 무슨 일이든 한번 겪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어려움은 반복된다는 것이지요.
 
주역에서는 새들이 흩어지듯이 그 세력이 약화되는 것은 부나 성과를 이웃과 함께 하지 않았고, 믿음으로서 경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 결과 고을을 지키던 성곽은 무너져 내리고, 왕명은 통하지 않으며, 바른 일도 비난받게 됩니다. 레임덕의 상황이 바로 이럴 것입니다.
 
지난해 말의 두바이 사태에서 보듯 위기 재발의 가능성이 세계경제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유럽발 위기가 올 수도 있고, 더블딥이 조기에 현실화될 수도 있습니다. 대외의존도가 국내총생산 대비 75%인 우리나라는 작은 충격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자리 창출을 통해 고용문제를 해결하고 서민들의 한숨을 거둬들이지 못한다면 새들이 흩어지듯 지지세력이 떨어져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들의 분노가 5개월 뒤 6월 지방선거에서 표출될 수도 있습니다.
 
태평성대를 노래하기 전에 기울지 않는 평지는 없고, 위기는 반복된다는 주역의 가르침을 되새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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