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로 본 2009 외환시장 "격세지감"

머니투데이 이새누리 기자 2009.12.2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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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세지감" 외환시장에서는 올 한해를 이렇게 회고했다. 원/달러 환율이 4 ~ 5일 사이 100원 가까이 올랐고 월말과 월초 차이가 200원에 이르렀던 격변의 시대가 불과 몇달 전이었다. 하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환율이 떨어졌고 최근에는 세자리수 환율 시대가 임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달러의 수식어로 강(强)과 약(弱)이 공존한 한해기도 했다.

# 살얼음판 3월
한 외환당국 관계자는 올 한해를 되짚어봤을 때 가장 긴박했던 순간을 3월 6일로 꼽았다. 이날 장중 최고가는 1597원. 여차하면 1600원을 뚫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몇십원씩 오르내리는 환율을 보면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3월이 불안했던 배경엔 3월 위기설이 있었다. 3월 결산을 맞아 국내에 유입된 일본계 자금이 대거 이탈할 거란 설이었다. 결국 낭설로 끝났지만 당시 5년물 국채 신용부도스와프(CDS)프리미엄은 460bp까지 올랐다. 환율은 1500원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허경욱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나서 "최악의 사태가 닥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진화했지만 위기설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불안감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위기설의 진앙지로 꼽혔던 동유럽 지원을 가시화하면서 차츰 진정됐다.



# 도전받는 달러
그간 경제 패권을 쥐고 있던 미국이 오랫동안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거라고 천명하면서 글로벌달러 가치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전반적인 달러약세 흐름에 유로화와 신흥국 통화는 강세를 띠었다.

이런 달러약세는 통화전쟁에 불을 붙였다. "통화정책은 권력정치"라는 말처럼 G2로 급부상한 중국은 기축통화를 IMF특별인출권(SDR)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중국이 무역이 타격을 받을 걸 우려해 위안화 절상을 유보하면서 미국과 환율갈등을 겪기도 했다.

캐리트레이드 통화로 굳건히 자리를 지켰던 엔화도 달러화에 자리를 내줬다. 달러라이보금리가 엔라이보를 밑돈 것이다. 16년만에 역전이다. 이때문에 미국에서 달러가 빠져나와 신흥시장국으로 흘러들어가는 달러캐리트레이드도 활발해졌다.


# 자취감춘 구두개입
지난해와 견주었을 때 크게 변한 것 중 하나는 당국의 시장개입이다. 올들어 구두개입이 일어난 건 지난 10월 초 한번 뿐이다. 그것도 환율이 급등해서 아니라 급락한 데 따른 개입이었다.

김익주 국제금융국장은 "(원화 절상) 쏠림현상이 과도한 만큼 필요하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실질적인 구두개입이 10여차례 일어난 걸 감안하면 극히 미미하다.



'윤증현 경제팀'이 강만수 전 장관 때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꺼리는 측면도 있지만 시장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는 방증도 된다. 개입은 주로 한번에 환율을 움직이는 고강도개입보다 속도조절을 위한 미세조정(Smoothing Operation) 차원에서 이뤄졌다.

한국은행은 외환시장이 평상시로 되돌아왔다는 판단에 따라 외화유동성을 전액 회수했다. 내년 2월 종료되는 한미 통화스와프계약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외화창고도 두둑해졌다. 11월말 기준 외환보유고는 2700억달러를 넘어서 사상최대치를 기록했다.

# 남아있는 불씨
환율이 완연한 안정세를 보이던 지난달 26일 아랍에미리트 국영 두바이월드가 채무상환유예를 신청하면서 시장은 또한번 휘청했다. 두바이에 돈을 많이 넣어둔 유럽 은행으로 불똥이 튀면서 그 여파는 아직 이어지고 있다.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등 유럽국가들의 신용위험이 불거지고 미국에서 경기회복 기대가 살아나면서 달러도 강세로 돌아섰다. 달러는 이달 들어서만 5% 넘게 올랐다. 환율도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말이나 올초 같은 변동폭은 아니더라도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순 없는 상황이다.

아직 달러캐리트레이드 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점도 유념해야 한다. 미국이 금리인상 조짐을 보이면 달러가 한순간에 빠져나갈 가능성도 크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3월 위기설을 비춰보면 '위기설'이 터졌다는 것 자체가 다른 주요국에 비해 변동성이 굉장히 크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자본시장이 개방된 만큼 해외충격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금융혼란 재발을 막기 위해 근본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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