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시프트]금융 질서의 변화

머니투데이 엄성원 기자 2009.09.2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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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이후 금융 질서의 변화를 위한 몸부림이 한창이다. 글로벌 정부 당국은 월가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기력을 되찾은 월가는 정부 당국의 변화 움직임을 무산시키려는 시도에 나서고 있다.

리먼 붕괴 후 먼저 칼자루를 잡은 쪽은 구제금융으로 금융사들을 살려낸 각국 정부와 관련 감독기구다. 실적 악화와 투자자들에게 입힌 손해의 책임을 물어 금융사 임직원들의 연봉을 제한하고 고수익만을 탐하는 고위험 투자 관행에 제동을 걸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그러나 위기를 넘긴 은행들이 속속 공적 자금을 상환하면서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월가의 급여는 이미 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고 신용 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던 복잡한 파생상품들도 시장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변화의 물결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전세계인들은 금융기업들의 탐욕이 일으킨 위기의 참혹한 결과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변화를 거부하는 금융기업들을 분노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금융개혁은 우선 금융권의 과도한 급여 제한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도한 급여는 파생상품과 레버리지 등 고위험 투자를 낳은 위기의 주범이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도 급여 제한은 주요 이슈로 다뤄질 예정이다.

신용디폴트스왑(CDS) 등 위험한 장외 파생상품거래를 장내로 끌어들이자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런던거래소(ICE)가 이미 CDS청산소 운영을 시작했고 세계 최대 파생상품 거래소인 시카고상업거래소(CME)그룹도 청산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아직은 지지부진하지만 글로벌 공통 회계 기준 마련을 위한 논의도 시작됐다. 기업들의 부정확한 회계와 이를 묵인한 회계감사기관 등 총체적인 회계 부실에도 위기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판단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업과 결탁, 채권과 모기지 증권 등에 무분별하게 높은 등급을 부여한 신용평가사들의 전횡에도 제동을 걸 계획이다.


유럽연합(EU)도 유럽 금융시장의 감독을 단일화하기 위해 유럽시스템리스크이사회(ESRB) 설립을 추진 중이다. 회원국 이해관계가 상충해 합의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위기 관리의 중요성을 위한 첫발을 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글로벌 공통의 위기관리시스템 구축을 위한 큰 틀의 논의도 있지만 개별 국가의 이해가 상충하다보니 세부사항에 대한 합의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틈을 타 금융기업들의 탐욕도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씨티그룹이 최근 감독 당국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한 에너지 투자 책임자에게 1억달러의 연봉을 지급한 것은 단적인 예다.

올 상반기 월가 6대 은행이 직원 보수에 들인 돈은 610억달러. 신용위기 와중에 수만명이 월가를 떠난 것을 감안할 경우 사실상 월가의 연봉 수준은 지난해와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월가가 다시 탐욕하고 있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일갈은 전혀 과장된 게 아니다. 금융의 변화가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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