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AIG빌딩 매입과 '황영기 신드롬'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인겸 더벨 대표이사 부사장 2009.09.1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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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우리금융그룹 산하 사모펀드 운용사인 우리프라이빗에퀴티(우리PE)의 이인영 대표와 우리PE가 42%의 지분을 갖고 있는 금호종금 김종대 대표가 조용히 뉴욕을 다녀왔습니다. 1억5000만달러에 산 뉴욕 월가의 AIG빌딩 매입 축하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PE는 지난 5월 투자사인 금호종금과 함께 이 빌딩을 매입했고, 8월말 정식 계약을 했습니다. 월가를 대표하는 최고의 AIG빌딩을 한국계 자본이 매입했다는 것은 10여년 전 외환위기 때 서울의 주요 빌딩들이 줄줄이 외국자본에 넘어간 기억을 되살려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뉴욕에서 막 돌아온 이 대표에게 물어봤습니다. 지금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겠느냐고. 그는 벌써 감정가 기준 4억달러로 올랐다고 했습니다. 잘나갈 땐 이 건물이 10억달러까지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은행 전현직 임직원에 대한 중징계가 몇달 앞서서 일어났다면 우리PE는 AIG빌딩을 매입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못했을 것입니다. 이건 추측이 아닙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더벨' 9월10일자 기사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파생상품 투자 손실과 관련, 중징계를 내린 이후 우리금융그룹의 투자은행(IB)업무가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황영기 신드롬' 또는 '황영기 후폭풍'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지요.
 
'더벨' 보도에 따르면 우리금융그룹은 최근 3건의 빅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세계적 사모펀드인 블랙스톤과 3억달러를 비롯, 우리PE와 국민연금 블랙스톤의 10억달러 사모펀드 조성, 리딩투자증권과 진행 중인 미국 교포은행 '한미은행' 인수 등입니다.
 
이중에서 3억달러 펀드 조성 건은 금융당국까지 반대하고 나서 추진 여부가 불투명하고, 나머지 2건도 규모가 축소되거나 투자구조를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특히 우리금융그룹 내부에서 반대 목소리가 아주 크게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보니 최고경영자가 의지를 갖는다 해도 실제로 추진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 되고 있습니다.
 
어제오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금융당국이 개별 투자건에 대해서까지 간섭하는 게 과연 옳은지 모르겠지만 실무자들의 경우 그들의 반대를 탓할 순 없습니다. 전임자들이 줄줄이 문책을 받고 일부의 경우 앞으로 금융권에 발붙이고 사는 것조차 어렵게 됐기 때문입니다.
 
겨우 '주의적 경고'를 받아 '직무정지'의 황영기 회장과 형평성 논란에 휩싸였던 박해춘 국민연금 이사장이 사표를 던졌습니다. 처세가 달인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퇴진은 국가를 위해서도 다행한 일입니다.
 
황영기 회장은 화를 삭이는데 며칠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곧 떠나겠지요. 그게 황영기 회장다운 태도입니다. 천지가 막혔을 땐 일단 몸을 피해야지요. 행정소송은 왜 합니까. '덕'은 외롭지 않습니다. 다만 이번에 함께 징계를 받은 우리은행 직원들에겐 진심으로 미안해 해야겠지요.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IB업무까지 사표를 던지고 떠날 수는 없습니다. 천재지변과도 같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하루아침에 1조원 이상을 날릴 수 있지만 뉴욕 AIG빌딩 매입처럼 계약한 지 며칠 만에 수천 억원을 벌 수도 있는 게 IB업무입니다. 그걸 왜 그만둡니까. 왜 포기합니까.
 
내일(15일)이면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지 꼭 1년이 되네요. 그 지긋지긋했던 서브프라임발 금융위기의 마지막 뒷모습이 저기 보입니다. 실패가 있는 미완성은 새로운 출발이며, 가능성이며, 꿈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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