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회장님이 에쿠스 대신 카니발 타는 이유

이상배 기자, 사진=임성균 기자 2009.09.10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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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인터뷰]김승진 비츠로시스 부회장

- 자동제어시스템 기술 국산화 주역
- 올해 매출액 1500억∼2000억원 목표..작년의 2배 이상


부회장님이 에쿠스 대신 카니발 타는 이유


김승진 비츠로시스 부회장(52)은 11인승 카니발을 타고 다닌다. 고속도로에서 버스 전용차로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대전에 있는 조달청, 수자원공사를 상대로 하는 사업이 많다보니 고속도로를 이용할 일이 잦다. 부회장이라는 직함에 어울리지 않지만, 김 부회장은 그래도 예전에 에쿠스 탈 때보다 지금이 좋다고 한다.

"임대료와 연료비 모두 에쿠스의 절반 정도다. 얼마나 경제적이냐. 직원들과 점심 먹으러 갈 때도 차 한대에 모두 태우고 갈 수 있어 편하다"



김 부회장은 체면 따위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오로지 일에 미쳐서 살아왔다. 부회장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난 20년 가까이 밤 11시 이전에 퇴근해 본 적이 없다. 중소기업이 대기업들을 상대로 싸워서 이기려면 독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후덕한 인상과는 정반대의 지독한 '승부사' 근성이 느껴진다.

20년 전까지도 미국, 일본 기업들이 시장을 독식하고 있던 한국 자동제어시스템 시장에서 기술 국산화를 이뤄낸 주인공이 바로 김 부회장이다. 이 기술을 토대로 장태수 비츠로시스 회장과 함께 회사를 국내 송·변전망 원격제어감시시스템, 수처리 분산제어시스템 시장에서 1∼2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삼성SDS, LG CNS, SK C&C, LS산전 등 굴지의 대기업 계열사들을 상대로 싸워서 일궈낸 결과다. 현재 국내 도로에 깔려있는 감시카메라들 가운데 약 20%도 이 회사가 설치한 것이다.



장 회장과 김 부회장은 공교롭게도 한양대 공대 동기동창 사이다. 하지만 김 부회장이 1990년 비츠로시스에 합류하기 전까지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둘이 조우하는 과정을 보면 극적인 수준을 넘어 운명적이기까지 하다.

김 부회장이 처음 다닌 회사는 금성산전(현 LS산전)이었다. 이 곳에서 송·변전망 원격제어감시시스템 업무를 맡게 됐다.

1980년대 당시 우리나라의 송·변전망 원격제어감시시스템 시장은 미국 해리스(현 GE해리스), 일본 도시바, 독일 지멘스 등 외국 업체들의 놀이터였다. 금성통신, 효성, 현대중공업 등 국내 업체들은 한국전력으로부터 발주를 받으면 외국 업체들의 시스템을 대신 설치해주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프로그램 명령어 고작 8개조차 바꿀 기술이 없어서 외국 업체에 당시 돈으로 20만달러를 지불하기도 했다.


보다 못한 한국전력이 제안해 시작된 것이 해리스의 금성산전으로의 원격제어감시 기술 이전이다. 이 때 김 부회장도 연수팀으로 뽑혀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해리스 본사에서 기술 연수를 받았다. 차츰 원격제어감시 기술에 재미를 붙인 김 부회장은 휴일까지 반납하며 밤 10시까지 사무실에 남아 공부를 했다. 실력이 늘자 해리스 실무진 측에게 김 부회장에게 조금씩 일을 맡겼다. 이 과정에서 김 부회장은 해리스의 기술 자료를 상당량 확보했다. 한국 원격제어감시 기술 국산화의 첫걸음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 부회장은 기술 국산화가 충분히 가능하다며 팀을 독려해 기술 개발에 몰두했다. 그러나 조직이 뒷받침해주지 않았다. 개발비 지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여기에 인사 발령까지 나면서 김 부회장은 기술 부문을 떠나게 됐다. 능력을 인정받아 고속 승진을 하며 핵심보직으로 불리는 기획과장의 자리까지 맡았다. 하지만 끝내 '원격제어감시 기술 국산화'의 꿈은 버리지 못했다. 고민이 극에 달한 1990년의 어느 날 김 부회장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사표를 던지고 회사를 나왔다.



한편 그즈음 광명제어(현 비츠로시스)의 장 회장은 원격제어감시시스템 시장 진출을 위해 백방으로 전문인력을 수소문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대학 동기로부터 "공대 동기 중 한명인 김승진이란 친구가 기술팀을 이끈 전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락처 확보에 나섰지만, 끝내 실패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김 부회장은 이때 이미 소일거리 삼아 광명제어의 사무실을 드나들며 일을 돕고 있었다. 당시 직원 중 누구도 장 회장이 그토록 애타고 찾고 있는 인물이 김 부회장이었음을 모르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김 부회장이 장 회장이 서로 인사를 나누게 되기까지는 그랬다. 첫 만남에서 장 회장은 김 부회장에게 기술 개발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김 부회장의 승낙과 함께 원격제어감시 기술의 국산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김 부회장은 곧장 기존 회사에서 팀원들을 영입해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이어 한국전력 등을 상대로 수주 작업을 벌여 기존 외국 업체들이 제시하던 가격의 5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으로 원격제어감시시스템을 수주받았다.



김 부회장은 "기술 국산화가 이뤄지지 전까지 우리나라의 원격제어감시시스템 시장은 외국 업체들의 재고 처리장 신세였다"며 "외국 업체들은 우리나라에 구형 시스템을 공급하고도 부르는대로 돈을 받아갔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고 말했다. 현재 비츠로시스는 국내 원격제어감시시스템 시장의 약 30%를 점유하며 LS산전과 함께 자웅을 겨루는 위치에 있다.

원격제어감시시스템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뒤 비츠로시스는 수처리 분산제어시스템 시장으로 영역을 넓혔다. 가까운 위치의 하수처리장 여러 개를 묶어 통합감시하는 시스템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것이 비츠로시스다. 충주, 수완보 하수처리장 통합감시시스템이 그 시작이었다.

지금은 지능형교통시스템(ITS) 시장에도 주력하고 있다. 지난 2005년에는 천안시 건을 포함해 국내에서 발주된 ITS 프로젝트 5건 가운데 4건이 비츠로시스와 KT의 컨소시엄에게 돌아갔다.



대부분의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그렇듯 김 부회장도 승승장구만 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ITS 시장에서 비츠로시스는 참패를 경험했다. 총 10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들이 발주됐지만, 비츠로시스는 단 한건의 대형 공사도 수주하지 못했다. 2005년 호황 때 비츠로시스에게 밀린 삼성SDS, LG CNS, SK C&C 등 대기업 계열사들이 서로 컨소시엄을 구성하며 연합전선을 구축한 것이다.

김 부회장은 "지난해 실패의 경험을 거울삼아 올해부터는 전략을 바꿔서 무조건 대기업 계열사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있다"며 "전략을 바꾼 덕분에 올해는 지금까지만 300억원 어치를 수주하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서러움의 기억도 많다. 한번은 고객인 공공기관 실무자를 접대하던 중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로 참기 어려운 수모를 당하고 밖으로 뛰쳐나가 10년 넘게 끊은 담배를 피우며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이라크 정부로부터 1억달러 짜리 가스터빈 발전소 설치 프로젝트를 따온 뒤 자재 구매비를 빌리러 은행에 갔을 때에는 "중소기업이 무슨 1억달러 프로젝트냐. 본사 건물 담보로 맡기면 빌려주겠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중소기업도 대기업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 물었다.



"젊을 때 한 선배가 해준 이야기가 있다. 공은 안고 뛰는 게 아니라 멀리 던져 놓고 찾으러 뛰어가는 거라고. 목표를 크게 설정해놓고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평생을 도전적 목표를 갖고 살아왔다. 누가 '이런 큰 프로젝트는 대기업들이 하는 거다'라고 하면 '무슨 소리냐. 붙어보자'고 했다. 지기도 했지만, 이기기도 했다. 중소기업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김 부회장은 올해도 도전적인 목표를 내걸었다. "올해 1500억∼2000억원의 매출액을 올리는 것이 목표다. 지난해 매출액(794억원)의 2배 이상일 것이다. 이미 국내 수주액 목표는 약 70% 달성했다. 해외에서는 브라질 고속철 사업 수주를 추진 중이다. 내년에는 이라크에서만 송·변전망 원격제어감시시스템으로 1억5000만달러, 발전소 설치 공사로 1억5000만달러를 수주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실적으로 보여주겠다"

◆ 김승진 부회장은 누구= 1957년 경기도 고양에서 경찰의 아들로 태어났다. 1972년 동국대 사대부속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스스로 문과 기질이 다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적성검사 결과를 믿고 이공계를 선택했다. 1975년 한양대 정보통신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3학년 때 해병대를 지원, 2년여를 복무했다.



1982년 대학 졸업과 함께 금성산전(현 LS산전)에 입사했다. 이후 최연소 대리로 승진했고, 미국 해리스 본사에서 송·변전망 원격제어감시시스템 기술 연수를 다녀온 뒤 기술 국산화의 가능성을 확신했다. LG산전 자동화사업부 기획과장으로 있던 1990년 8월 자진 퇴사했다.

다음달 광명제어(현 비츠로시스)에 입사해 국산 송·변전망 원격제어감시시스템 공급을 시작했다. 부장부터 시작해 임원, 사장을 거쳐 부회장까지 올랐다. 딸 두명이 모두 외고를 나온 뒤 대학에서 영어, 중국어 등 어학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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