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터졌던 나라' 편견과 싸웠다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9.09.0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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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1년] (1) 다시 밀려온 쓰나미

작년 10월 300억불 통화스와프 한국향한 오해 변화
은행 유동성 문제… 한은 '자본확충펀드' 지원 해결
이제 응급상황 넘겼을 뿐… 구조조정 본게임 남아


# 2008년 9월15일. 미국에서 날아온 소식은 충격이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신청.'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의 여유는 사라졌다. 금융위원회엔 한마디로 비상이 걸렸다.



첫 발걸음이 제일 빨랐다. 미국에서 뉴스가 나오기 전 미리 상황을 파악한 덕이다. 정부 관계자가 전한 뒷얘기는 이렇다.

"이창용 금융위 부위원장이 먼저 알았습니다. 이 부위원장의 해외 인맥으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것이죠.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이 부위원장은 관련부처 등에 정보를 보고하고 금융위 실무라인에도 대응을 주문했습니다".



이른바 '선제적 대응'이 준비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미래는 불투명, 불확실했다. 당시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이던 김주현 증선위 상임위원은 "예측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고 돌이켰다. 끝을 모르는 터널로 진입한 것이다.

# 미국발 금융쓰나미에 한국 금융시장은 출렁댔다. 예견된 결과였다. 그래도 결국은 한국경제의 힘을 믿어줄 것이라 기대했다. 외환위기를 극복해낸, 세계 6위의 외환 보유 국가의 힘을 자부했다.
'외환위기 터졌던 나라' 편견과 싸웠다


하지만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를 바라보는 눈은 차가웠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말 그대로 전세계의 위기였습니다. 한국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해외투자자들은 색안경을 쓰고 우리를 보더라고요."

금융위 고위 관료의 말이다. 이른바 '낙인효과'(Stigma). 우린 '외환위기 극복'이란 문구를 가슴에 달았지만 그들은 우리 이마에서 '외환위기 경험국'이란 주홍글씨를 봤다.


"경험적으로 압니다. 자칫 해외투자자들이 일거에 자본을 빼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게 두렵고 무서운 거죠. 투자은행(IB), 금융그룹 등을 상대로 비공식 설명회도 여러 차례 열었습니다. 그때마다 묻는 게 똑같았습니다. '외화유동성 괜찮냐' '안전하냐'는 거였죠. 우리에게 글로벌 금융위기는 해외투자자들의 '오해'로 기억됩니다."

#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지고 한달반이 지난 10월말. 미국과 300억달러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한국을 향한 '오해'를 해명하느라 분주하던 금융당국에는 한마디로 단비였다. 당국자의 말은 이어진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물 속에 빠진 것은 맞습니다. 다만 우리 수영실력은 괜찮았습니다. 물도 깊지 않았고요. 그런데 물 밖에선 저 선수들이 언제 익사할까 지켜보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때 산소통이 던져진 것이죠. 해외투자자들의 시각도 '죽진 않겠네'로 변했습니다."

영어에 능통하고 국제금융계에 적잖은 인맥을 구축하고 있던 전광우 금융위원장도 톡톡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한번 찍힌 낙인이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엔 은행이 도마에 올랐다. 외신은 하루가 멀다 하고 국내 은행을 향한 걱정을 쏟아냈다.

나라의 외환 곳간에 쏠린 의심의 눈초리는 어느새 은행 유동성으로 옮겨갔다. "외환위기 때 은행의 건전성이 문제였다면 이번엔 건전성이 좋아도 유동성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김광수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

# 필요한 것은 '신뢰'였고 믿음을 주기 위해선 '돈'을 보여줘야 했다. 정부가 은행에 유동성만 공급해주면 걱정은 눈 녹듯 사라질 터였다.

대내외여건은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은행의 상태가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미국·일본의 중앙은행은 우리보다 앞서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쏟아부었다. 한국정부가 은행에 돈을 대더라도 문제삼을 상황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 '낙인'이 문제였다. 외환위기 때 투입된 '공적자금'에 대한 추억(?)은 당국자들의 결단을 어렵게 했다. '공적자금=부실'을 연상케 했다.

해외투자자들의 우려가 불식되기는커녕 증폭될 가능성이 많았다. 국민의 감정도 비슷했다. 당국은 여러 아이디어를 구했다. 미세조정을 거쳐 나온 게 '자본확충펀드'다. 물론 그림을 그렸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펀드'에 돈을 넣어줄 '전주'(錢主)가 필요했고 한국은행이 나섰다. 은행 유동성에 대한 우려는 그렇게, 조금씩 사라졌다.

물론 응급상황만 넘겼을 뿐이었다. 퇴원이 아니라 본격적인 입원치료를 할 때였다.
금융당국은 곧바로 '기업구조조정'으로 방향을 잡았다. "금융위기 초기엔 오해와 싸웠습니다. 그 뒤는 구조조정입니다. 모두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한 것이죠. 초기가 관념적이라면 구조조정은 실질적 싸움이죠." 말그대로 뼈를 깎는, 피 흘리는 수술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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