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뷰]일본 '脫亞入歐'에서 '脫美入亞'로

머니투데이 박형기 산업부장 대우 2009.08.3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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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뷰]일본 '脫亞入歐'에서 '脫美入亞'로


일본에서 54년만의 정권교체가 이뤄졌습니다. 자민당 일당독재(?)가 종식된 겁니다.

이번 선거 결과는 메이지유신 때 후쿠자와 유키치가 내걸었던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사회를 지향한다)라는 슬로건이 124년 만에 수명을 다한 '대사건'입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때부터 아시아에서 벗어나 유럽을 추종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덕분에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서구화된 나라가 됐습니다. 최소한 경제에 있어서 만큼은 일본은 아시아가 아닙니다. 외신이나 경제 관련 각종 보고서에서 'Asia, Excluding Japan(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이라는 표현을 아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서구화로 인해 선진국이 된 일본과 개발도상국이 대부분인 아시아의 경제 통계를 같이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수사법이 나온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일본은 아시아가 아니란 뜻입니다.



실제 일본인들은 서구화가 상당히 진행돼 있습니다. 필자가 90년대 홍콩에서 유학할 때의 일입니다. 같은 반에 일본인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더치 트리트(Dutch treat, 콩글리시로 더치페이)가 생활화 돼 있더군요. 같은 유교문화권인데 상당히 놀랐습니다. 베이징에서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어 홍콩으로 유학지를 바꿨다고 고백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이미 서구화된 일본인이 90년대 베이징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 일본이 탈아입구를 폐기하고 '탈미입아'(脫美入亞, 미국을 벗어나 아시아를 지향한다)를 선언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압승한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는 대미일변도 외교에서 미국과 대등한 외교로 전환하고, 동아시아를 중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야스쿠니 신사 대신 별도의 참배시설을 갖추겠다고 했습니다. 신사 참배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시아와 친해지기 위해 이웃이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겠지요.

정말 아시아 시대가 오긴 오는 모양입니다. 아시아가 싫다던 일본이 아시아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하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민주당의 승리는 세계경제에도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올 겁니다. 집권에 성공한 민주당이 중국이 주장하는 새로운 기축통화 논의를 찬성한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중국을 비롯한 브릭스(Brics) 정상들은 지난 6월 16일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회담을 갖고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기축통화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브릭스 국가들은 이를 위해 미 국채 대신 IMF 채권을 매입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대부분입니다. 브릭스가 아무리 잘나간다고 해도 아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새로운 기축통화 논의는 꺼져가는 불씨였습니다. 그런데 그 불씨를 되살린 장본인이 바로 일본입니다.

차기 내각의 재무상에 유력한 나카가와 마사하루 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13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달러 위주의 외환정책에 반대해 왔다"며 "1조 달러에 달하는 일본의 외환보유액을 미 국채에서 IMF 채권으로 점차 바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으니 새로운 기축통화 논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특히 세계 외환보유액 1위, 2위 국가인 중국(2조 달러)과 일본(1조 달러)이 한 목소리를 내면 새로운 기축통화 논의는 생각보다 빨리 진행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축통화가 아니더라도 전단계로 동아시아 '지역 기축통화'는 실현 가능하다고 봅니다. 사실 한중일 통화는 이미 통일돼 있습니다. 삼국이 모두 화폐를 원(圓)으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발음만 다릅니다. 중국은 위엔, 한국은 원, 일본은 엔입니다. 가치만 통일시키면 동아시아의 기축통화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한중일 3국만 묶어도 거대한 블록이 됩니다.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5조 달러, 중국이 4.4조 달러, 한국이 1조 달러 정도입니다. 동북아 3국만 10조 달러를 넘는 거대 경제권입니다. EU(16조 달러), 미국(14조 달러)에 이은 세계 3위입니다.

한때 서구를 짝사랑하던 일본이 다시 아시아로 돌아왔습니다. 황인종이 싫어서 백인이 되겠다며 집을 나간 '탕아(?)'가 다시 황인종임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다시 아시아의 일원으로 복귀하려는 일본의 변화에 박수를 보냅니다.



아시아의 가치를 재발견한 일본이 이웃 국가와 협력을 통해 아시아의 공동번영에 일익을 담당했으면 합니다. 일본의 '입아(入亞)'를 일단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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