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올라서…" 펀드 환매하는 이유

머니투데이 박성희 기자 2009.08.2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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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실수요형 ②직접투자형 ③햄릿형…환매이유 제각각

# 수도권에 사는 직장인 정 모씨는 2년 넘게 가입한 국내주식형펀드를 환매했다. 집주인의 급작스런 전세금 인상 통보에 '급전'이 필요했던 찰나 펀드가 원금을 회복하고 15% 가량 수익을 내고 있었던 것. 정 씨는 대출을 받을까도 생각했지만 줄곧 '마이너스'였던 펀드가 이익을 내기 시작했고 대출 금리는 오르는 추세여서 미련없이 환매를 결정했다.

코스피지수가 1600선을 돌파하면서 국내주식형펀드의 환매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고 있다. 지난 2007년 증시 활황과 펀드 열풍 속에 펀드에 가입한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환매 이유는 모두 제각각이다.



◇ '필요한데 마침 잘 됐다' 실수요형 환매
정 씨와 같이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펀드가 원금을 회복된 경우는 '때마침 잘 됐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환매한다. 2007년 말 고점에서 펀드에 가입한 이들은 투자기간 내내 수익률 하락에 마음고생만 하며 '펀드=위험 상품'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터다. 원금이 확보되는 것만으로도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다.

더군다나 전통적 비수기인 여름 휴가철에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전세 매물 품귀 현상과 함께 전세값이 급등하자 '펀드 환매'는 전세금 마련 수단 '0순위'로 떠올랐다.



펀드를 환매해 1500만원의 전세자금을 마련한 한 주부는 "그동안 신통치 못한 수익률에 시달렸던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는 펀드에 들고 싶지 않다"며 "차라리 금리 높은 예금에 꾸준히 돈을 넣는 게 정신적으로 편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억대 자산가들의 경우에는 펀드를 환매해 미뤄뒀던 부동산 투자금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모 증권사 PB센터 팀장은 "얼마 전 한 고객은 손실률이 적은 펀드를 정리해 여의도 급매물로 나온 상가를 매입했다"며 "상반기까지 부동산 투자를 보류했던 이들이 수십억대의 펀드 환매금으로 잠실 재건축 단지나 지하철이 개통되는 판교 등에 아파트를 매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 '차라리 내가 투자한다' 직접투자형


자동차나 IT주 등 일부 종목들이 올들어 100~200% 급등하는 걸 보며 제자리 걸음인 펀드 수익률에 답답해 하는 이들은 이미 코스피가 1200선을 뚫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찍이 펀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정 없는 단기 급등이 불안하긴 하지만 여전히 투자할 만한 매력적인 종목이 많다는 게 '직접투자형'들의 생각이다. 이들은 IT나 자동차 뿐만 아니라 제일제당 (124,600원 ▲1,500 +1.22%), 대한항공 (22,550원 ▼50 -0.22%) 등 원화 강세 수혜주나 녹십자 (164,400원 ▲2,100 +1.29%), 유한양행 (145,400원 ▲19,900 +15.86%) 등 신종플루 관련주에 관심이 높다.



이기태 한화증권 갤러리아지점장은 "특정 종목을 장기간 보유한다기 보다는 전체 투자 금액을 '플러스'로 유지하는 수준에서 종목별 순환매를 많이 한다"며 "흐름만 잘 타면 한 종목당 보름 정도 보유하는 게 대세"라고 말했다.

현주미 굿모닝신한증권 역삼PB센터장은 "직접 투자를 선호하는 고객들은 코스피가 단기적으로 1650~1680포인트, 내년 상반기까진 1800선까지 오를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가 많다"며 "환율이 1100원까지 떨어지지 않은 이상 외국인 순매수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우량주를 선호한다"고 전했다.

◇ '주가가 더 오를까..이러지도 저러지도' 햄릿형



주부 홍 모씨는 며칠 째 펀드를 환매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중이다. 이제 겨우 원금을 회복했는데 조금만 더 버티면 30% 수익은 거뜬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앞으로 증시가 많이 오르진 못할 것'이라며 엊그제 3년 묵힌 펀드 환매해 뉴 CMA(종합자산관리계좌)에 넣었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니 내일 당장 환매를 해야할까 싶기도 하다.

올들어 국내주식형펀드(상장지수펀드(ETF) 제외)에서 3조8000억원이 빠졌다지만 여전히 많은 투자자들이 펀드 환매를 고민하고 있다. 현대증권에 따르면 국내주식형펀드의 54%인 44조원이 코스피 1600포인트 위에서 유입된 자금이다. 앞으로 본격적인 환매가 쏟아질 것이라는 관측도 이에 기인한다.

실제로 지난 24일 코스피지수가 지난 24일 1612.22로 마감하며 1600선을 돌파하자 하루 뒤인 25일 국내주식형펀드선 3100억원의 환매가 쏟아졌다. 신규 설정액을 감안한 순유출액은 2400억원으로, 자금 유출입 통계 조회가 가능한 2006년 5월30일 이후 11번째로 큰 규모다.



특히 직장인 월급날인 25일은 보통 적립식펀드를 중심으로 신규 자금이 몰리는 날이라는 점에서 이날 환매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게다가 내년부터 해외펀드와 장기주식형펀드 등 그동안 주어졌던 펀드 세제 혜택이 모두 종료되면서 펀드 투자에 대한 매력도 반감된 상태다.

오성진 현대증권 WM컨설팅센터장은 "코스피가 1600포인트로 올라서자 '본전'을 찾고자 하는 환매까지 더해진 것"이라며 "올들어 코스피가 40% 넘게 오른 상황에서 추가 상승 여력이 적어 환매 욕구가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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