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2년간 글을 올렸더니 드디어 판매자가 나타났습니다!”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책이 있다. 출판사는 사라졌고 국내 저작권도 없다. 그런데 찾는 이는 많다. 헌책방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수십 권이 한꺼번에 팔려 나갈 정도다.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동화책 ‘에이브(Abe) 전집’, ‘메르헨 전집’, ‘소년소녀세계현대명작전집’ 등이 이제는 성인이 된 30대들의 추억을 자극하고 있다.
에이브 동화책은 제목도 남다르다. ‘파묻힌 세계’, ‘아이들만의 도시’, ‘시베리아 망아지’, ‘막다른집 1번지’, ‘매는 낮에 사냥하지 않는다’, ‘우리 어떻게 살 것인가’, ‘마침내 날이 샌다’, ‘늑대에겐 겨울 없다’ 등 어린이를 위한 동화인가 싶을 정도다.
스웨덴 동화작가 해리 클만의 ‘한밤의 소년들’은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불행한 삶을 사는 청소년을 다뤄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아버지에게 네 가지 질문을’은 호르스트 부르거의 작품으로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히틀러에 저항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등 독일 역사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송영택 시인이 직접 번역했다고 알려져 있다.
학원출판사의 메르헨 전집 55권도 마찬가지다. 헌책방에서 권당 8500원 상당에 거래될 정도다. ‘작은 티스푼 주머니’, ‘초컬릿 공장’ 등은 손에 넣기 힘든 희귀본이 됐다.
이렇게 인기인데 책이 왜 다시 안 나올까. 당시 이 동화전집을 냈던 출판사들이 지금은 거의 문을 닫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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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1980년대에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일본어 번역본을 한국어로 옮기는 형식의 '해적판'이 성행했다. 때문에 전집의 모든 작품을 정식으로 해외 원작자의 저작권과 판권을 사 번역, 출간한 게 아닐 경우 재출판이 쉽지 않다.
수년전 부도를 맞은 도서출판 계몽사 관계자는 "소년소녀세계현대명작전집은 출판사가 문을 열면서 5권으로 시작해 30권을 완성하기까지 독자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라며 "회사가 문을 닫기 직전인 2000년대 초반 일부 작품을 묶어 재출간해 매진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도 찾는 독자가 많지만 그때 원본을 다시 출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추억의 동화집을 찾아 헌책방을 뒤적이는 이들의 수고를 덜 뾰족한 방법은 당분간 없을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