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칼, '혁신 스파크'로 한전 담금질하다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2009.08.1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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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CEO In&Out / 취임 1년 김쌍수 한전 사장

“임기 내 성과에 연연하지 않겠다. 한전이 잘 되도록 토대를 구축하겠다. 후에 잘되면 나에게 술을 사라. 잘못되면 내가 사겠다.”

김쌍수 한국전력 (21,950원 ▼250 -1.13%)공사(KEPCO) 사장이 강도 높은 파격 인사에 대한 주변의 우려에 대해 "방만한 공기업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며 한 말이다. 오는 8월 말로 취임 1년을 맞는 김 사장은 한전의 변신에 쌍칼을 뽑아들고 진두지휘에 여념이 없다.



쌍칼은 LG전자 CEO 시절부터 불렸던 그의 별명이다. 일처리가 명확하고 특유의 카리스마에다 이름까지 비슷해 드라마 <야인시대>의 극중 인물인 쌍칼로 불렸던 것.

생존경쟁이 치열한 가전업계의 메이저 플레이어인 LG전자의 부회장에서 자산규모 65조원이라는 국내 최대 공기업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는 별명에 어울리는 변화를 시도했다. 대규모 조직개편과 공기업 초유의 파격 인사가 그것.



올 초 한전은 본사의 24처89팀을 21처70팀으로 축소하고 4500여개에 이르는 간부 직위를 공개적으로 경쟁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처ㆍ실장 등 핵심 간부의 76%, 팀장급 등의 40%가 물갈이됐다.

비단 선수교체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이전까지 직급에 따라 직위에 한계가 있었지만 올해 인사에서 벽이 무너졌다. 팀장급 직원이 처장으로 발탁된 것이 그 예다.

신임 부서장에게 맡긴 팀장 등 하위간부의 임명 과정도 철통보안 속에 이뤄졌다. 신임 부서장은 휴대전화 압수는 물론이거니와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갔다. 인사청탁을 사전에 근절하기 위한 김쌍수식 인사방법이었다.
쌍칼, '혁신 스파크'로 한전 담금질하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보직경쟁에서 밀려난 1급 직원은 명예퇴직을 하거나 직무 재교육을 받고 있다. 김쌍수 사장의 칼바람에 한전 임직원은 1년 내내 한겨울을 경험해야 했다.


◆체질 개선하는 한전

김쌍수 사장은 혁신운동가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전력도 최근 새로운 기업 혁신운동에 정신이 없을 정도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보고서 두께다. ‘리포트 123’이라는 보고서 작성원칙에 따라 모든 문서는 3장 이내로 요약해야 한다. 사내 보고건수도 절반으로 줄였다.



용지 몇장 아끼는 것이 경영혁신과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김 사장의 생각은 다르다. 작은 것에서부터 절약하는 것이 경영혁신의 시작이라는 판단이다. 보고시간을 줄이는 대신 현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는 뜻이 포함된 것은 당연하다.

소위 이삭줍기로 알려진 한전의 체질개선은 문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자신부터 비서실의 규모를 30% 줄였고, 전등 소등 같은 작은 것부터 노후 변압기 교체 기준 변경이나 변전소 소형화 등 경비절감효과가 있다 싶으면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 결과 김 사장 취임 이후 한전은 1117억원의 경비를 절감했다. 2분기 영업이익 2372억원으로 흑자전환한 것도 이삭줍기의 힘에서 나왔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LG전자 시절 혁신프로그램

김쌍수식 경영혁신은 TDR(Tear Down & Redesign)에서 잘 나타난다. TDR은 제품이나 서비스, 프로세스 등을 완전히 찢어버리고 근원적으로 혁신한다는 의미로 LG전자 시절 김 사장이 주창한 혁신 프로그램이다.

5%의 실적향상을 위해서는 기존 업무를 개선하는데 그치지만, 30%의 실적향상에는 근본 문제를 완전히 새롭게 해야만 가능하다는 개념을 한전에도 똑같이 적용 중이다.



김 사장은 GE에서 벤치마킹해 성공한 6시그마의 툴도 한전으로 가져왔다. 6시그마 기법은 1996년 GE의 6시그마 발표에서 영감을 얻은 김 사장이 LG전자에 적용해 재미를 본 기업 혁신 프로그램이다.

LG전자 재직시절 김 사장은 양문형 냉장고 디오스의 골칫거리를 이 기법으로 해결했다. 당시 LG전자는 디오스의 약랭 불량 문제를 찾지 못해 고민 중이었다. 6시그마 기법을 적용하면서 문제가 제조가 아닌 설계에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전면적으로 개선했다.

그 결과 디오스는 양문형 냉장고 국내시장점유율 1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그는 다양한 경영혁신운동을 바탕으로 3년 동안 LG전자는 영업이익률을 3배나 끌어올리는 성과를 올리며 혁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LG전자 2중대’ 비판도

한국전력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오른쪽 상단에 ‘Great Company’라는 문구가 보인다. 한전의 새로운 슬로건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슬로건은 LG전자의 옛 슬로건과 상당히 흡사하다.

지난해까지 LG전자가 사용한 문구는 ‘Great Company, Great People’이었다. 김 사장이 LG전자 부회장 시절, 강한 회사가 강한 직원을 만들고, 강한 직원이 강한 회사를 만든다며 직원을 독려하던 문구다. 지금은 ‘People Company’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전의 변화에 LG전자의 경영혁신모델뿐 아니라 슬로건까지 차용하자 일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1990년대 성공한 모델을 2010년을 앞둔 시점에 적용하는 것과 가전업체와 공기업에 똑같은 경영모델을 적용하는 것이 무리라는 지적이다. ‘김 사장이 여전히 LG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사장이 한전의 자회사 사장단 임명식을 진행한 것도 LG전자 시절 부회장으로서 장악력을 펼쳤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동안 한전은 발전자회사 사장은 임명식 없이 취임했지만 김 사장이 오고 나서는 상황이 바뀌었다. 김 사장은 일일이 자회사 사장에게 임명장을 건네며 ‘몸가짐에 신경 쓰라’고 충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사장은 한전의 방만한 공기업 이미지를 깨기 위한 열쇠로 회사 장악을 선택했다. 임기 내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한전이 잘 되도록 토대를 닦겠다는 김 사장. 김쌍수식 개혁드라이브가 남은 임기 2년간 계속될 것으로 판단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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