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필요한 건 비관론이다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부사장 2009.08.1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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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진의 상식적인 투자]그들이 낙관론이면 100% 피크다

대공황 이래 최악이라는 금융위기가 발생한지 1년이 채 안 됐는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 듯 하루가 다르게 경제상황이 호전되고 있다.

OECD국가 중 경기회복 속도가 제일 빠르다는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도 화색이 돌고 있고, 20년 복합불황에서 헤매던 일본도 경기가 제법 살아나고 있다. 유럽도 최근 한숨을 돌리는 형국이고, 이웃 중국은 예전의 초고속 성장 궤도를 다시 밟고 있다.



인도나 싱가포르 기타 아시아 개도국들 역시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고 있다. 와중에 성미 급한(?) 사람들은 경기회복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이제 그 사이 풀어 놓은 유동성을 거두어들이는 소위 '출구전략'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필요한 건 비관론이다


과연 위기가 끝난 것일까? 대부분 전문가들이 최소한 금융위기로부터는 탈출했다고 믿는다. 작년 리먼 사태 이후 거의 마비되다시피 한 금융시장이 최근 상당 부분 풀어졌기 때문이다. 금융기관 사이에 거래가 늘어나고 있고, 은행의 대출도 다시 증가하고 있다.

한 때 격렬하게 흔들렸던 외환시장도 급속히 안정을 되찾고 있고 미국의 경우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2년 전 수준을 회복했다. 또 비록 부실자산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최근 성공적인 자본조달로 주요 은행들은 파산 위기를 넘긴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증시도 미국 S&P지수가 최저 시세에서 67%나 상승했고, 코스피지수도 작년 저점에서 거의 70% 올랐다. 기타 주요국 증시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시장은 하락 행진을 멈추고 있다. 우리나라는 강남권을 중심으로 예전 최고 시세에 육박하는가 하면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도 서서히 감소하고 있다. 백화점 매출이 늘어나고 소비심리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실물경제는 어떨까? 삼성전자가 2/4분기에 깜짝 이익을 발표한 것을 필두로 주요 기업들이 2~3년 전 호황기의 수익성을 속속 회복하고 있다. 게다가 하반기에는 수익성이 더 호전될 것이라는 기업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미국도 비슷하다. 월가의 주요 투자은행들이 과거 전성기의 이익을 거의 따라가고 있고 제조업체의 수익성도 예상보다는 훨씬 양호한 성적을 내고 있다.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포드자동차가 최근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기사회생하는 모양을 보이고 있고 신규주택 착공건수는 바닥을 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작년 말 이후 해고됐던 9000만 명의 ‘농공민’ 중 8000만 명이 최근 재고용 됐다는 소식이 들어온다. 한 마디로 글로벌 경제가 완연히 기지개를 펴는 모습이다.


물론 최근 경기회복이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회의론자들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미국 실업률 증가세가 꺾이지 않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주택가격도 아직 반등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세 번째 이유로는 금융권에 여전히 남아있는 엄청난 부실자산이 지속적으로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나 미국의 비관론자들은 현재 진행 중인 경기회복이 일시적이며 내년 이후에는 다시 하강하는 전형적인 "더블 딥(Double Deep)"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답은 시간이 보여줄 것이기 때문에 굳이 비관론자들의 논리를 반박해야 할 이유가 없다. 또 경제는 상당부분 과학적 논리라기보다는 감정적인 비과학적인 영역이기도 하기 때문에 장기 예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오히려 경험적이고 직관적인 접근이 정답에 더 가깝게 다가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필자는 다른 모든 논리를 떠나 이번 '위기의 진행 과정의 시간성에' 초점을 맞춰 향후 사태추이를 추측해보고 있다. 리먼 파산 이후 전 세계 금융시장과 실물경제가 마비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3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지를 해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는 생각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최근 경제를 리셋(Reset) 경제라고 부른다. 그 의미는 대공황이래 최악의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룰과 시스템을 완전히 재정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를 다르게 해석한다면 마치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일시적으로 다운되었을 때 우리가 리셋(Reset) 버턴을 눌러 재부팅 시키듯 서브 프라임 론이라는 바이러스에 오염돼 전 세계 금융과 경제가 일시적으로 마비됐지만 중앙은행의 강력한 바이러스 퇴치 프로그램(즉 유동성 공급)으로 글로벌 경제가 다시 부팅됐다고 볼 수 있다.

위기의 진행 속도가 3개월이었다는 의미는 그만큼 세계 경제가 복합적이고도 기하급수적으로 상호 연계되었다는 얘기고 이는 만약 회복한다면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호전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의 하드웨어가 망가진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일부 프로그램이 순식간에 나가버린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경기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고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다.

필자의 오랜 경험으로 본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관론자들의 지속적인 비관론이다. 만약 이들조차 낙관론으로 돌아선다면 그땐 분명 피크(정점)일 가능성이 100%이기 때문이다. 당분간 주가 상승과 경기호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월가의 격언처럼 비관론으로 돈을 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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