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의 한계, 금융지주의 한계

더벨 성화용 부국장 2009.08.06 10:00
글자크기

[인사이드]①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

이 기사는 08월03일(09:07)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예금보험공사(예보)가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의 우리은행 시절 투자손실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울지 지켜보고 있다. 금융파생상품에 투자한 ‘원죄’를 묻겠다는 예보측 논리는 이리 저리 재봐도 별로 납득하기 어렵다.



투자상품으로부터의 손익흐름과 무관하게 최초 투자자가 가장 큰 책임을 지는 게 맞는 건지, 황회장 퇴임 후 사후적으로 투자손실을 줄일 여지는 없었는지, 예보와 금융당국은 감독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건지, 반문이 잇따르는데도 마땅한 답을 들은 적이 없다.

투자의 위험도를 따질만한 깜냥이 안되니, 돈을 벌면 적당히 넘어가고 손해를 보면 책임을 묻는 예보의 주먹구구식 감독행정을 이해해줘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서 예보와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다. 황회장을 집요하게 문책하려는 배경에서 그에 대한 적의(敵意)와 면피(免避) 욕구가 읽히기 때문이다.

황회장은 우리은행장 재임시절부터 예보와 엇박자가 심했다. 경영정상화 이행약정(MOU) 범위를 넘어서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줘 주의조치를 받았다. 우리은행 매각방안, 카드사 인수를 포함한 M&A전략 등에서 본인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시키면서 갈등을 빚기도 했다.

황회장은 ‘관료보다 더 관료적인’ 예보의 감독 방침이 은행의 경영정상화를 막는다고 불만을 표했다. 예보는 예보대로 대주주를 무시하는 황회장의 거침없는 행보를 못마땅해 했다.


그렇지 않아도 미운 판에 ‘투자손실’이 도마 위에 올랐으니, 그냥 넘어갈 리 없다. 더욱이 누군가에 확실한 책임을 지우면 그 만큼 감독자로서의 예보 책임은 희석된다. 이렇게 앞뒤를 재보면 ‘황회장 문책’건은 상식과 논리를 넘어선 변수들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황회장이 문책대상으로 지목되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막후에서 공격하는 측도 등장했다. 기본적으로는 황회장의 상처가 덧나 물러나기를 바라는 사람 또는 그 주변의 세력들이다. 여기에 평소 황회장에게 유감이 있었거나, 황회장의 힘이 줄어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자들도 가세하고 있다.

KB금융지주는 국내 최대은행인 국민은행을 포함해 다수의 금융회사를 산하에 거느리고 있다. 사실 그 회장 자리는 헤아릴 수 없는 이해관계의 중심이다. 꼬투리가 잡히니 자연스레 ‘반(反) 황영기 연대’가 형성되고 있다. 물론 그들의 이해관계는 제각각이어서 서로 관심도 없을테니, 굳이 ‘연대’라 칭하기도 애매한 측면은 있다.

황회장의 인간적·현실적 한계가 여기서 드러난다. 황회장은 오연(傲然)한 인물이다. 삼성에 있을 때도, 우리은행장(우리금융회장) 시절에도 뻣뻣하기로 유명했다. 자존심과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공무원을 만나도 당국자를 만나도 스스로 인정하는 인물이 아니면 제대로 모시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아예 그런 자리를 잘 만들지도 않는다. 그는 ‘정치’보다 ‘합리’를 신봉한다. 스스로 설득되면 아랫사람 말도 쉽게 따르지만 설득력 없는 힘에는 굽히기 싫어한다. 예보와의 갈등도 그렇게 생겨났다.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 유연하고 정치적인 사람들은 쉽게 빠져나간다. 때로 공격자들에게 머리를 숙이거나 이익을 양보해 소나기를 피하기도 한다. 황회장은 그게 잘 안 된다.

KB금융지주는 1조원의 유상증자를 진행중이다. 당초 지주사 경영진은 2조원을 하려고 했지만 사외이사들이 가로막아 1조원으로 깎였다. 이렇게 집행부가 하려는 일을 사외이사들이 가로막기 시작하면 경영이 버거워진다.

당초부터 사외이사 구성에 황회장 지분이 없어 고전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지주사-이사회’간의 문제가 ‘황영기-예보’간의 문제와 맥이 닿아 있다면, 그 부담의 무게는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