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전략' 언제·어떻게가 핵심 키워드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2009.07.30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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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긴급진단]①출구전략 논란-시기상조론이 대세

편집자주 지난해말부터 추락을 거듭하던 한국 경제가 저점을 통과해 완연하게 기지개를 펴고 있다. 경제의 '물길'과도 같은 내수와 수출이 동반 호전되는 등 각종 경기지표가 장밋빛 일색이다. 특히 소비심리는 7년 만에 최고 수준에 도달해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최대 악재였던 환율도 안정세를 지속 중이다. 이런 한국 경제를 두고 불룸버그의 칼럼니스트는 "(한국 경제의 빠른 회복을 이룬)한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한다"고 극찬했다. 국내외 경제연구기관들의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 전망 상향조정도 러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너무 샴페인을 일찍 터뜨리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여전히 존재한다. 정부의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빼면 민간 차원의 자생력은 떨어진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딜 경우 '더블딥'(경기 회복 이후 다시 침체되는 현상)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경고음도 들린다. 긍정과 부정이 엇갈리고 있는 전환기의 한국 경제를 둘러싼 핵심 현안을 5회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

최근 들어 '출구전략'(Exit strategy)이라는 용어가 부쩍 자주 등장한다. 출구전략은 과도하게 풀린 자금을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 없이 회수하는 방법을 통칭한다.

한국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면서 경기부양을 위해 시장에 쏟아 부은 자금을 '언제(When)', '어떤 방식으로'(How) 회수하느냐가 출구전략 논란의 핵심 키워드다. 특히 현재 논의의 초점은 '타이밍'에 맞춰져 있다. '선제적인 집행이 필요하다'는 주문과 '아직은 때가 아니다'는 의견이 맞서 있다.



조기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아직까지는 소수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출구전략의 조기시행을 주문하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KDI는 지난 2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가 사용한 비상조치들을 이제는 거둬들여야 한다"고 밝혀 출구전략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일부 경제전문가도 KDI의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



KDI는 정부의 비상조치들이 △반(反) 시정적이고 △장기간 지속될 경우 도덕적 해이를 확산시키고 △구조조정을 막아 경제체질을 약화시킨다는 이유를 들어 출구전략은 빠를 수록 좋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꺼지지 않는 과잉유동성 우려도 조기 출구전략에 힘을 싣고 있는 요인이다. 정부는 침체된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28조4000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최대한 공급해왔다.

이런 결과로 시중에 넘치는 돈이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는 부동산투기와 물가불안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이런 시각에 대해 정부와 대다수 경제연구기관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6일 21세기경영인클럽 강연을 통해 "현 단계로서는 어떻게 나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준비하는 수준에 있다"며 "언제 실행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통화정책을 총괄하는 한국은행도 마찬가지로 조기 출구전략에 부정적이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이달 9일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경기 하강세에서 벗어났으나 아직은 불확실성이 커 통화정책 기조를 바꿀 때가 아니다"고 못박았다.



이 총재는 이달 17일 시중은행장들과 함께 한 금융협의회에서도 "출구전략을 본격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재정부와 한은의 '공조'에도 불구하고 출구전략과 관련된 논란이 불식되지 않자 청와대까지 나서 '확인사살'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7일 라디오 연설에서 중도서민노선을 강조하면서 "현 시점에서 출구준비를 시행하는 것은 이르다"고 말했다. 서민 대책을 위해서는 확장적 거시정책을 거둬들일 시기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한 것이다.



전기 대비 올해 2분기 성장률이 정부 예상치(1.7%)를 훨씬 상회하는 2.3%로 나오기는 했지만 3분기에는 정부의 재정역할이 축소되면서 0%대 전망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출구전략 가시화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이에 따라 출구전략을 둘러싼 논란은 투기 열풍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거나 물가불안이 가시화되지 않는 이상 당분간 수그러들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금리인상 등 협의의 출구전략이 아닌 점진적인 유동성 회수와 단계적인 부동산 투기 억제 대책 시행 등 광의의 출구 전략은 '소리 없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대처하면서 외과수술과도 같은 타깃처방 요법이 동원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미 한은은 금융권에 빌려준 외화자금과 중소기업 대출자금에 대한 만기연장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흡수하고 있기도 하다. 한은은 경제위기기 이후 공급한 27조여원 가운데 17조여원을 거둬들였다.

그렇다면 '공식적인' 출구전략 카드는 언제쯤 등장할 것인가. 대다수 전문가들은 빨라도 한국 경제가 어느 정도 반석 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4분기 이후에나 금리인상을 필두로 한 출구전략이 가동될 것으로 전망한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전년 동기대비 성장률이 플러스로 전환하거나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회복되는 조짐이 보일 때 출구전략을 본격화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경기가 중간에 꺾이거나 경기양극화가 심해질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자산시장 버블을 가라앉히는 식의 미세조정은 수시로 동원하겠지만 금리인상이나 재정긴축 등의 출구전략은 경기회복이 안정단계에 접어든 후에나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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