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하나 더 썼더니 잘 팔린 이유는?

머니위크 이정흔 기자 2009.07.3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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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스퇴]비싸게 파는 법/ ③고가 마케팅

편집자주 자신의 가치를 100% 인정받는 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원한 화두다. 물품에서 노동력까지. 매일 수많은 경쟁 대상들 사이에서 비교되고 평가받는다. 1등 신부감 되기, 외모 경쟁력 높이기, 연봉 높이기, 경력관리 등 자신의 가치를 높여 줄 수 있는 방법을 비롯해 중고물품에서 고가 브랜드 마케팅까지 '비싸게 파는 비법'을 취재했다.

서울 강남의 한 고급 백화점. 세련된 유럽풍의 여성용 핸드백에 15만원의 가격표를 붙여 전시했지만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았다.

백화점 측은 판매가 미진한 원인을 분석했다. 답은 가격표. 사람들이 가격표를 보고는 '이 제품은 별로 인기가 없나보군' 혹은 '아주 좋은 제품이 아니 모양이지' 하고 지레짐작 했다는 것이다. 백화점은 종전의 판매 가격에 ‘0’을 하나 더 넣어 150만원에 내놓았다. 결과는? 그날 이후 핸드백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고 한다.

<명품 마케팅>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실화라고 한다. “같은 품질의 제품이라도 비쌀수록 물건이 더 잘 팔린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베블렌 효과’다.



하지만 무턱대고 가격만 높게 붙인다고 고가(高價) 마케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15만원이 왜 150만원이 됐는지 소비자를 먼저 설득해야 한다. 당신의 제품을 ‘명품’으로 만들어주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차이. 제일기획 커뮤니케이션연구소 박경연 국장으로부터 더 비싸게 팔기 위한 ‘고가 마케팅’ 전략을 들어봤다.

◆제품이 아닌 ‘특별한 가치’를 팔아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고가 마케팅과 관련한 오해 한가지를 짚고 넘어가자.

비싼 물건을 더욱 선호하는 사람들의 소비 심리에는 과시욕이라는 게 깔려있다. 한 마디로 눈으로 보이는 계급이 사라진 이 시대에 나의 능력이나 계급을 나타낼 수 있는 수단, 즉 ‘이 물건을 사용하는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소비라는 것이다.

그러니 아주 당연하게도 고가 마케팅을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급스럽다’는 이미지가 핵심이다. 이 고급스럽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데 자본이 만만치 않게 필요할 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 가는 바. 그렇다면 이 같은 고가마케팅은 거대한 자본을 마케팅에 투자할 수 있는 대기업에서나 가능하다는 얘기일까?


“언젠가 TV에서 이런 사례를 본 적이 있어요. 정말 다 쓰러져 가는 허름한 가게인데 빗을 만드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파는 참빗의 가격이 최소 30만원부터 100만원이 넘어요. 보통 참빗의 10배 정도 비싼 가격인데도 사람들은 굳이 이 빗을 사고 싶다며 매일매일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죠.”

박 국장은 “고가 마케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자본에 의한 광고보다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자발적인 노출의 힘이 더 크다”고 말한다. 문제는 참빗 하나에 기꺼이 100만원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사람들을 믿게 만드는 것이지, 가게의 규모가 아니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답은 오히려 쉬워요. 사람들이 참빗 하나에 100만원을 투자하는 이유는 그것이 특별하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소비자들은 단순히 하드웨어, 그러니까 제품의 물질적인 부분만 구매하는 게 아닙니다. 그 물건에 깃들어 있는 역사나 장인정신 같은 이면의 가치에 가격을 지불하는 거죠.”

박 국장은 스타벅스 커피를 예로 든다. “초기 스타벅스 커피는 비싼 커피의 대명사 였잖아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방 커피 대신 가격이 그 두배에 달하는 스타벅스에 몰려들었거든요. 마케팅 측면에서 보자면 특히 스타벅스는 테이크아웃 커피라는 데 주목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길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잖아요. 그것만으로도 남들과 다른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거죠.”

◆똑똑해진 소비자들 “아예 안사거나, 최고를 선택하거나”



스타벅스 얘기가 나오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그녀들, 바로 ‘된장녀’다. 한끼 식사는 라면으로 때우면서도 커피는 곧 죽어도 스타벅스를 마셔야 하고, 한달을 쫄쫄 굶을지언정 몇백만원짜리 구두로 자신을 치장하는 덴 돈을 아끼지 않는다. 된장녀라는 단어에는 허영심에 찬 그녀들을 향한 비웃음이 섞여 있는 게 사실이었다.

박 국장은 “된장녀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고가 마케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된장녀를 허영심, 사치와 결부 지으며 배타적인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요즘엔 이 역시 그녀들의 능력이나 선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이들에 대한 시선이 전체적으로 고와(?)졌다는 분석이다.

“사실 예전에는 고가 마케팅을 진행하더라도 워낙 조심스러운 경우가 많았어요. ‘1% 초부유층’을 강조하려면 대중들의 아니꼬운 시선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엔 차 광고만 보더라도 ‘1%만을 위한’이라는 걸 대놓고 얘기하잖아요.”



물론 이 밑바탕에는 최근 소비 패턴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안사면 아예 안사고, 사면 확실하게 좋은 것을 산다’ 이게 요즘 소비자들의 중요한 특성이에요. 만약 1% 초부유층이 가질 수 있는 명품이 10개라고 한다면 일반 대중들은 그 10개를 다 갖지는 못하지만 그 중에 하나는 가질 수 있는 시대거든요. 예를 들어 비록 스피커는 고가의 제품을 사지 못하더라도 이어폰은 몇십만원짜리 최고급 제품으로 사용하겠다는 거죠.”

◆은밀함과 희소성이 관건



그렇다면 이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어떻게 하면 설득할 수 있을까. 비싼 값을 지불하고서라도 제품을 선택하게 하려면 어떤 점을 공략해야 하는 걸까. 박 국장은 “답은 은밀함과 희소성”이라고 단언한다.

“가장 가까운 예로 요즘은 휴대폰 한대 가격이 냉장고 가격이랑 맞먹는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고가인데도 없어서 못 판다고 하지요. ‘남들이 쉽게 갖지 못하는 걸 나는 갖고 있다’는 심리인데, 그래서 요즘엔 의류나 패션 명품은 물론 노트북 같은 전자 제품들도 ‘신상품 한정 판매’ ‘스페셜 에디션’ 등이 많아요. 희소성을 최대한 드러내고 강조하는 거죠.”

VIP마케팅을 통해 은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프리미엄 전자 제품 판매를 위해 VIP 고객들만을 대상으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거나, 그들만이 어울릴 수 있는 문화와 공간을 마련해 주는 식이다.



“사실 부자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적 기회나 혜택은 얼마나 많겠어요. 단 한번의 문화 이벤트 때문에 이들이 고가의 제품을 선택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죠. 답은 누구도 쉽게 범접하지 못하는, 그들만 알고 있는 은밀한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죠.”

그가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인다. “TV 한대의 가격이 7000만원이라고 하면 상상이 잘 안되지요. 이 TV의 특별한 점은 사실 기술력이나 디자인 같은 제품의 구성 요소가 아니에요. 단 한명의 고객을 위해, 고객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맞춤 주문으로 생산해주죠. 이런 서비스를 통해 ‘내가 특별 대우를 받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파는 겁니다.”

**박경연 국장 프로필
MSU 광고학 석사. 12년 동안 제일기획에 근무하며 삼성전자, 삼성그룹, 대교, 피죤, 삼성물산(래미안), 네이버 등 다수의 브랜드 마케팅 기획ㆍ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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