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회장, "제철은 됐고, 이젠 반도체"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2009.07.1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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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CEO In & Out]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김준기회장, "제철은 됐고, 이젠 반도체"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던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지난 7월1일 모습을 드러냈다. 충남 당진군 송악면에 위치한 동부제철 아산만공장에서 열린 첫 열연코일 생산 기념식 참석차였다.

김 회장은 40년 숙원사업인 동부제철의 열연강판 공장에서 감회에 젖은 듯, 전기로의 쇳물이 튀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봤다.



예정에 없던 기자들과의 만남은 이후에 벌어졌다. 약 1시간20분가량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경영활동에 집중했을 뿐, 은거생활을 한 것이 아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김 회장은 스스로를 '산업농민'이라고 표현했다. 한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묵묵히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업가와 농민은 닮은 점이 있다는 해석이다. 그는 동부메탈을 예로 들면서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오기 위해 별 짓을 다했다"고 기업가의 애환을 털어놓기도 했다.



더불어 김 회장은 이날 '세계 제일'을 화두로 삼았다. 신성장동력과 관련된 사업을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찾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첫 생산된 열연코일에 '세계 제일'이라는 휘호를 남긴 터였다. 묵묵히 노력한 성과물이 1등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의지의 반영이었다. 숱한 우여곡절을 넘어선 기업가는 이 단어를 통해 그룹이 직면한 생존 화두를 던진 셈이다.

◆전기로 설비로 기대감 높아


이날 완공한 전기로 열연강판 공장은 세계 최대 규모로 1969년 동부건설 (4,425원 ▲50 +1.14%)의 전신인 미륭건설 설립 첫해부터 꿈을 키워 온 사업이다. 아산공장 기공식에서 "20대의 꿈을 이뤘다"고 소회를 밝힐 정도로 제철공장 설립은 그의 오랜 숙원사업이기도 했다.

세계 6위권인 웨이퍼 제조업체 실트론을 매각한 자금으로 전기로 건설비용에 투자한 것만 봐도 그가 제철공장 설립을 얼마나 갈망했는지 잘 보여준다.



김 회장이 고로 대신 전기로 설비로 마음을 굳힌 것은 1991년이다. 미국의 철강업체 뉴코어가 기존의 고로 설비를 대체하기 시작하자, 당진 아산만공장에도 전기로를 만들 것을 확정했다고 한다. 기존의 고로보다 자연친화적이고 경제적인 전기로가 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

동부제철은 전기로 설비를 완공하면서 고로 설비보다 3분의 1가량의 비용을 절감했다. 경제성을 바탕으로 한 열연강판 생산이 본격화되면 영업이익률도 2배 이상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도체 8년 만에 첫 흑자



김 회장은 현장에 얼마 남지 않은 1세대 기업인이다. 대부분의 창업주들이 세상을 떠났거나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노후를 즐기는 반면 김 회장은 여전히 현장을 누비고 다닌다.

하지만 그의 경영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무리한 투자로 그룹 전체 위기를 가져왔다는 평가와 기업가의 도전정신을 높이 사야 한다는 견해다.

부정적 평가의 중심에는 동부하이텍 (36,150원 ▼850 -2.30%)이 있다. 동부하이텍은 동부일렉트로닉스와 동부한농이 합병한 회사다. 당시 합병을 두고 김 회장이 반도체 진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비료회사와 통합하는 악수를 뒀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회장은 비메모리 반도체사업이 선진국형 고부가가치사업이고 한국 전자산업의 기반이라는 확신 때문에 힘들지만 분투하고 있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무리수 논란 속에 김 회장의 반도체사업은 지난 5월 들어 깜짝 실적을 발표했다. 반도체사업 진출 8년 만에 처음으로 월 단위 흑자를 냈기 때문이다.

영업이익 규모는 10억원 안팎에 불과하지만 월 매출은 540억원으로 역대 최대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글로벌시장의 침체국면 속에 이뤄낸 결과에 동부하이텍이 턴어라운드 한 것 아니냐는 조심스런 전망도 흘러나오고 있다.



◆하이텍, 제2의 전기로 될까?

유동성 문제는 여전히 동부그룹의 발목을 잡고 있다. 동부하이텍의 2조8928억원을 비롯, 그룹 전체의 부채는 6조6939억원에 이른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또 다시 정면 돌파할 의지를 다지고 있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알짜회사인 동부메탈과 함께 동부하이텍의 울산 유화공장과 부동산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 울산 유화공장과 부동산 매각대금은 동부하이텍의 부채비율을 줄이는데 쓰인다.



1일 간담회에서도 김 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예로 들면서 "기업가에게 돈보다는 아이디어와 추진력이 필요하다"며 반도체 사업을 끈기 있게 추진해나갈 것임을 밝혔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거북선 그림이 담긴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영국으로부터 조선소 건립비용을 빌려온 일화처럼 돈보다는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이 김 회장의 생각이다. 전기로 열연강판 공장을 완공한 뚝심처럼 반도체 사업을 성공시킬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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