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폭 넓히는 이재용, 가속 페달 정의선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2009.06.24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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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삼성·현대차, 분주한 2세 행보

대한민국 재계 순위 1ㆍ2위인 삼성과 현대차그룹의 후계자들이 본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해외시장 개척이라는 사명을 띠고 그간 움츠렸던 경영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보폭 넓히는 이재용, 가속 페달 정의선


이재용 삼성전자 (63,000원 ▼100 -0.16%) 전무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 경영권 승계 문제로 여론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온데다 최근 이혼소송이 알려지면서 이슈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룹 장악의 발판이 되리라 믿었던 'e-삼성' 프로젝트의 실패는 그의 경영일선 등장에 항상 발목을 잡았다.



다행히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던 안개가 조금씩 걷히는 듯하다. 무엇보다 10년을 끌었던 경영권 불법 승계 논란이 법원 판결에 따라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정의선 기아차 (105,600원 ▲2,100 +2.03%) 사장의 경우 이 전무보다 몇 걸음은 앞서 있다.



지난해 말 콘셉트카 소울 출시 기념식에서 아버지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나란히 모습을 드러낸 이후 미국 출장길도 나란히 올라 부자(父子)경영을 이어간 것이 광폭 행보의 시작이다.

보폭 넓히는 이재용, 가속 페달 정의선
3년간 적자에 허덕이던 기아차를 흑자로 전환시켰고 최근에는 아버지를 대신해 그룹 대표로서의 입지마저 다지고 있다.

물론 정 사장에게도 굴곡은 있다. 지난해 3월 정 사장은 기아차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세간에는 실적부진이 원인이라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뒤늦게 그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디자인 경영이 호평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지난해 정 사장은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6월 중순 현재 재벌가 후계자들은 '변속' 중이다. 이재용 전무가 잠시 움추렸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면 정의선 사장은 잠시 걸었다가 뛰기 시작한 모습이다.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두 후계자의 행보에서 선대회장 때(이병철-정주영)부터 이어오고 있는 재벌가 라이벌 시리즈의 전주곡이 흘러나오는 듯하다.



◆전면에 나서는 이재용, 먹구름 걷혔나?

지난 5월29일 대법원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과 관련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게 사실상 무죄를 선고했다. 따라서 삼성그룹은 이재용 전무의 경영세습 프로젝트를 본궤도에 올릴 수 있게 됐다.

10여년간 지속돼 온 삼성그룹의 경영권 불법 승계 논란이 사실상 마침표를 찍음에 따라 이 전무의 경영활동에 먹구름이 걷힌 상태다. 최근 이 전무도 서서히 경영활동 전면으로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6월2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23층에서는 세계 가전업계 라이벌인 삼성전자와 소니와의 만찬이 있었다. 이날 하워드 스트링어 소니 회장은 이재용 전무를 'My best partner'라고 칭하며 우애를 과시했다.

이 전무의 해외 파트너십 강화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이 전무는 6월16일 세계적인 통신장비업체인 중국 화웨이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이 전무는 삼성전자와 화웨이간의 정기적인 최고경영진 회동을 이끌어 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 전무가 해외 파트너십 강화로 그룹 내 입지를 다지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 전무의 해외활동은 지난해 10월 해외 순환근무를 발표하면서 부터다. 그는 일본과 중국 상하이를 거점으로 연이은 해외 현장경영을 계속해 왔다.

지난해 11월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과 엘 고어 부통령을 태국과 국내에서 차례로 만났고 올해 2월에는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40일간 해외 현장을 둘러봤다. 이후에도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최지성 사장과 대만, 일본, 러시아, 독립국가연합 등을 방문했다.

아직까지 이 전무의 역할은 크지 않다. 대부분 이윤우 부회장이나 최지성 사장이 대표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무의 경영권 장악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이미 '이재용의 사람들'을 곳곳에 배치해 경영권 확보의 수순을 밟았다. 특히 최지성 사장은 이 전무의 경영학 과외선생님으로 불렸던 인물이란 점이 이를 입증한다.

이 전무의 삼성그룹 경영권 확보를 위한 8부 능선을 넘은 시점에서 확실한 경영권 승계가 언제 이루어질 지 궁금증은 더해만 간다.

◆현대차 정의선, '순풍에 돛' 단 듯



이 전무가 해외에서 경영수업이 한창이라면 정 사장은 해외경영의 결실을 보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환율 덕을 보긴 했지만 기아차의 경영실적은 크게 향상됐다.

지난해 글로벌 자동차시장의 판매 증가율은 -6.2%. 반면 기아차는 3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2.1%의 판매 증가를 기록했다.

1년 새 정 사장의 위상도 크게 올랐다.



지난달 12일 정 사장은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지식경제부로부터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적극적인 마케팅과 해외 판매망 강화로 자동차 신규시장 개척 및 수출을 확대한 공로가 인정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날에는 금탑산업훈장 수상자가 없어 가장 큰 상을 수상한 인물은 정 사장이 됐다.

약 한달이 흐른 6월15일,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미국을 방문하는 현대기아차그룹의 대표에 정몽구 회장이 아닌 정의선 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식행사에서 정 사장이 그룹을 대표한 첫번째 자리였다.

정 사장은 3월 아버지와 나란히 미국을 방문하며 외부 평가를 다졌으며 4월 상하이모터쇼에서도 중국 시장 확대를 공개적으로 밝히며 위상을 높여왔다.



그룹 내에서도 정 사장의 후계구도 본격화는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기아차 경영 퇴진과 김경배 현대차 비서실장의 글로비스 부사장 발령은 정 사장이 현대차의 대표가 되기 위한 수순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올 초 정 회장은 돌연 기아차 대표이사직에서 사퇴해 정 사장에게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경배 부사장의 발령에도 숨은 의미가 있다. 6월25일 현대모비스 (223,500원 ▲500 +0.22%)와 오토넷의 합병이 이뤄지면 정 사장이 그룹의 핵심 지분을 소유하게 된다. 정 사장이 소유하고 있는 글로비스 지분 31.88%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의 시작이다.

2대에 걸친 그룹 총수의 비서 역할을 담당했던 김 부사장의 승진과 글로비스 발령이 정 사장의 그룹 내 위상을 높여 주리라는 관측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후계구도의 밑그림이 그려졌지만 삼성에 비해 비판의 목소리도 크지 않다. 정 사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검증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아차는 2007년 554억원 적자에서 지난해 3085억원 흑자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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