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은 거의 주말마다, 몇 시간씩, 몇 주째 이어졌다. 피곤한 몸보다 무거운 것은 마음이었다. 당시 외환위기의 한가운데 놓였던 한반도 상황에서 ‘북한(NK) 팩터’는 자력으로는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올가미’였다. 무디스, S&P 등의 한국 국가신용등급 평가 보고서마다 두번째 단락정도에서 예외없이 꼽던 최대 불안요인중 하나이다. NK 문제의 해결 없이는 위기 탈출도 요원해 보였다.
그렇게 몇 주가 이어진후 나온 양측간 합의는 단군이래 최대 위기라던 이른바 ‘IMF 사태’의 분수령으로 기억된다. 개인적으로도 환율이 1000원을 넘으며 시작됐던 ‘뉴욕에서의 IMF 사투’에 방점을 찍은 사건이다.
그런데, 이젠 다르다. 온 국민이 허망함에 잠긴 그 날 터진 핵실험 소식에도 긴장감이 지속된 시간은 40여분에 불과하다. 그 날도 쏘고 다음날도 또 미사일을 쏘았지만 증시도 끄떡없었다. 장거리 미사일마저 발사하겠다고 나오지만 분위기는 별반 다를 것 같지 않다.
워낙 되풀이되는 위협에 우리의 경계감이 무뎌진 것인지, 국제사회가 이골이 난 것인지는 모르겠다. 무디스, S&P, 피치 등은 즉각 보고서를 통해 NK팩터가 한국의 신용등급에 전혀 문제 안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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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파이낸셜 타임스가 재밌는 시각을 내놓았다. FT는 한국 증시가 북한의 핵실험이나 김정일 와병설 정도에는 흔들림이 없지만 통일은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은 한반도의 통일이 다시 멀어졌다는 사실을 해외 투자자들에게 일깨워준 신호음처럼 해석됐다는 것이다. FT는 칼럼의 제목도 '평양으로부터의 폭음'이라는 비유로 '평-뱅(PyungBang)'이라고 붙였다.
칼럼은 지난 1990년 독일 통일 과정에서 서독이 연간 4~5%의 GDP를 동독에 쏟아 부으면서 실업이 급증한 사례를 들었다. 그러면서 한반도 통일은 한국의 경제와 시장을 '두들겨 팰 것'이라며 통일비용으로 2조~3조 달러가 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잇단 북한발 악재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투자자들의 평정심이 유지되는 것은 여전히 통일이 멀기만 한 현실이라는 확신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북한의 후견인을 자처하던 중국의 입장도 이와 다를 바 없다는 분석이다. 북한 권력 공백시 우려되는 대량 북한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체제 유지는 필수 불가결이라는 설명이다. 솔직히 말하면 현 시점에서 휴전선을 무너뜨리고 1000여만명이 넘어온다면 한겨레는 공멸의 길로 나갈 수밖에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 가. '위협 요인'만 없다면 북한 체제의 권력 승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는 것도 드라마 못지않은 재미를 줄 것이다. 간간히 세계적 오보를 내주는 일본 언론들의 해프닝도 곁들여진다면 흥미는 배가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