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용의 힘, 사람의 힘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2009.06.1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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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CEO In & Out/ 남용 LG전자 부회장

만약 한국이 2002 한일월드컵을 위해 거스 히딩크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하지 못했다면 안방에서 박지성이 세계 최고 명문팀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비록 축구라 할지라도 역사에서 ‘만약’이란 가정이 무의미한지 잘 알지만, 푸른 눈의 ‘마법사’가 아니었다면 대학을 겨우 들어간 앳된 여드름 청년은 결코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했을 것이다.



히딩크는 박지성의 배경보다 잠재된 능력에 관심을 가졌다. 7년이 지났음에도 히딩크가 거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6월1일 LG전자 (110,100원 ▲600 +0.55%)는 푸른 눈의 외국인 용병을 수입했다. 주인공은 미국 자동차회사인 포드에서 27년간 근무한 35년 인사경력의 피터 스티클러 부사장이다. LG전자는 피터 스티클러 부사장을 최고인사책임자(CHO)로 영입했다.



남용 부회장은 외국인 임원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부회장 자신을 제외한 본사 7명의 최고경영진 가운데 6명이 외국인이다. 화이자와 존슨 앤 존슨 출신인 더보트 보든 최고마케팅책임자(CMO), IBM에서 영입한 토마스 린튼 최고구매책임자(CPO), 휴랫패커드 출신 디디에 쉐네보 최고공급망관리책임자(CSCO), P&G 출신 제임스 셰드 최고현장유통책임자(CGTMO) 등은 모두 푸른 눈의 외국인이다.

백우현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외모로 보자면 영락없는 한국인이지만 미국 국적을 갖고 있다. 정도현 최고재무책임자(CFO)만 한국 국적을 가진 유일한 본사 임원이다.

남 부회장이 외국인 임원을 선호하는 이유는 능력만 있으면 국적과 배경은 고려치 않겠다는 확고한 경영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기존 임원과의 마찰을 우려해 만류하던 구본무 회장을 설득시켰을 정도다. LG전자는 글로벌 대기업 중 외국인 임원의 비율이 가장 높은 기업이다.
남용의 힘, 사람의 힘


◆경쟁력 있는 직원 만들기


따라서 LG전자에서 영어는 외국어가 아닌 모국어다. 임원회의를 비롯해 각종 보고서류도 영어 일변도다. 회사 내 업무 관련 이메일도 영어와 한글을 함께 쓴다. 회사 내에서 외국어번역 지원 부서를 별도로 운영하기도 하지만 빠른 일처리를 위해서라면 각자 해결하는 것이 상책이다.

회사의 지원도 적극적이다. 직원들의 외국어 향상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 다각도로 이뤄지고 있다. 장소에 구애가 없는 전화영어 프로그램도 있고, 교육장 등지에서 진행하는 무료 영어강좌도 많다. 강의시간이 다양하고 실무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아 직장 내 호응도는 좋은 편이다. 자주 쓰는 용어를 영어 매뉴얼로 만들어 회사 내 인트라넷에 공유하기도 한다.



남 부회장이 취임 이후 지속하고 있는 ‘경쟁을 통한 인재육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본사 직원의 40% 정도를 생산과 영업현장으로 배치했다. 현장의 중요성을 전달함과 동시에 느슨한 조직 분위기를 쇄신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미래의 LG전자를 이끌어갈 신입사원의 경쟁력 강화도 남 부회장이 각별히 신경 쓰는 부문이다. 신입사원 연수교육은 기존 2개월에서 11개월로 늘었다. 2개월의 입문교육과 직군교육이 5개월로 늘었고 6개월의 멘토링 교육과 해외시장체험 등이 추가됐다.

남 부회장은 지난 2월 이례적으로 잡셰어링을 ‘신기루를 쫓는 것’이라고 정면 비판한 바 있다. 이 발언으로 남 부회장은 한동안 진땀을 흘려야 했다. 현 정부와 재계가 추진하는 일자리나누기 운동에 반기를 든 꼴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은 남 부회장의 ‘LG전자 리빌딩’과 어긋나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봐야한다. 신입사원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양보다 질’을 추구하고 있는 남 부회장으로선 ‘계획 없는 채용’에 대해 수긍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고객도 모르는 불편함을 찾아라

“LG 제품을 구입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난 2월 두바이에 있는 한 고객의 집을 찾아가 남용 부회장이 던진 질문이다. 해외 고객의 답을 손수 적어올 정도로 남 부회장의 고객에 대한 정성은 유명하다.

LG전자의 인간중심 경영은 고객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남 부회장은 취임 이후 줄곧 ‘고객들이 표현하지 않더라도 원하는 것을 찾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고객만족을 뛰어넘어 고객통찰 수준까지 끌어올리라는 주문이다.

남 부회장은 취임 이후 경영회의에 앞서 상담원과 고객 간 통화내용을 청취하는 시간을 할애했다. 청취 후 고객들이 직접적으로 요구하지 않더라도 불편해하는 것을 어느 틈에 발견해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휴대전화의 ‘DMB 시청 기능’을 ‘TV 방송’으로, ‘수신 보류 중’을 ‘조용히’로 바꾼 것도 고객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세심한 배려다.



인도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님버스 냉장고는 고객 눈높이에 맞는 기획으로 빛을 본 사례다. 인도의 한 마을에 집집마다 카메라를 설치하고 냉장고 사용 실태를 분석한 결과 야채칸의 활용빈도가 높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이를 통해 야채칸을 강조한 님버스 냉장고를 출시했다. 결과는 대성공. 보통 1%의 수익률을 기대하는 냉장고가 10%의 수익률을 올렸다.

소음이 높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송수신음 확대 휴대전화와 인체 감지 센서를 통해 최적의 온도를 맞춰주는 절전형 에어컨도 모두 ‘고객 인사이트 마케팅’을 통해 탄생한 제품이다.

취임 후 2년간 70여개국, 300여곳의 가정 방문. 훌륭한 인재 확보와 고객 중심의 극대화. 남용 부회장의 경영 전략을 이야기 하자면 ‘사람’이라는 단어로 귀결된다. LG전자가 어둠이 짙은 세계경기에도 불구하고 1분기 최고 매출(12조8530억원)을 올린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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