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아쉬운 '잡셰어링'

머니투데이 윤석민 국제경제부 부장 2009.05.2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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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은 아름답다. 그래서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지구촌 곳곳에 대규모 감원 삭풍이 몰아치는데도 불구, 일자리 나누기에 나선 한국의 사례는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외국언론의 지대한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핑크 슬리브’로 불리는 해고 통지서 달랑 한 장으로 직원을 내모는 서구식 관습의 잣대로 보면 인간적 체취마저 물씬 풍겨나는 정책이다.

더욱이 최근들어 세계 경제가 모처럼 깊은 침체의 심연에서 빠져나오는 징후가 보이기 시작하며 ‘잡셰어링’으로 일컬어지는 이 정책은 다시 한번 빛을 발할 전망이다. 대대적 구조조정의 후폭풍은 늘상 이른 회복을 붙잡는 족쇄가 되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감원, 감축이 잇따르면 경기 회복의 동력이 될 소비는 줄기 마련이다. 이른바 케인즈의 ‘절약의 역설’이다.
또 기업들은 숙련 일손 부족으로 이전의 생산성을 복구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려 다시 찾은 호황의 기회를 날릴 수도 있다.

2000년대 초반 ‘IT 버블’ 붕괴를 경험한 실리콘 밸리가 한 예이다. 이전의 활력을 되찾기도 전에 또다시 맞은 금융 위기의 유탄으로 향후 예전의 ‘명성’을 유지할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나아가 자동차, 금융에 이어 중국이 IT ‘R&D 메카’로 떠오르는 또한차례의 ‘파워 스위프트’를 볼 지도 모른다.



따라서 고통 분담끝에 맞이하는 달콤한 결과도 기대된다. 현 ‘역샌드위치’ 상황을 디딤돌삼고 잡셰어링을 통해 보존된 역량을 바로 쏟아낼 수 있다면 위기뒤 기회는 우리의 것이다.

어쩌면 늘 뒤쫓기만하던 일본을 따라잡을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 글로벌 시장 규모에 걸맞춰 몸집을 불려왔던 일본의 고통 체감도는 상대적으로 크다. 위기를 감지한 기업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규모 감원에 나섰고 섣부른 서구식 구조조정은 사회안전망마저 위협한다. 역전은 아니더라도 간극은 더욱 좁힐 찬스이다.

물론 최근들어 정책당국자들의 언어에서 ‘잡셰어링’ 단어가 잦아들었다. 대신 어감도 무시무시한 ‘잡킬(Job Kill)’이 자리했다. 행간에 구조조정에 미온적인 몇몇 기업을 겨냥한 레토릭이 담겨있는 것으로 짐작해 본다.
여기에 덧붙여 ‘잡셰어링’이 정말 정책적 구호에 그치지 않고 효과로 나타났는지에 대해서는 일말의 의구심도 없지 않다. 설마 정부가 눈가리고 아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불안감은 따로 있다. 잡셰어링의 성패를 가름하는 정책적 뒷받침이 결여되고 있는 점이다.

알려진대로 잡셰어링의 원조는 대공황기 허버트 후버 미 대통령이 기치로 내건 '셰어 더 워크 무브먼트(Share the work movement)'이다. 여기에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기부양책이 더해져 후임자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으로 완성됐다.



뉴딜에 대해서는 미국을 대공황 수렁에서 건져낸 성공적 정책이라는 평판이 다수이지만 실패한 정책이라는 엇갈린 평가도 만만치 않다.

뉴딜 비판자들이 꼽는 실패 요인중 하나는 물가 통제의 실패이다. 일자리를 보장하는 기업들의 ‘눈치’를 보느라 물가 상승을 묵인하고 말았다. 이 결과 3년간 소매물가가 20%이상 뛰기도 했다. 이는 잡셰어, 달리 말해 임금이 삭감된 일반인들에게는 ‘고통’을 의미한다. 비판론자들은 뉴딜이 ‘빈곤의 나날’을 연장시켰을 뿐이라고 일축한다.

똑 같은 우(愚)가 범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마트에 가보면 어쩜 내가 좋아하는 품목만 그렇게 오르는지 모르겠다. 쌀도 내 가계부 기준에 따르면 20% 올랐다. 삼겹살 값이 진정됐다싶으니 채소값이 장난이 아니다. 실제로 다른 선진경제국들이 물가하락에 따른 디플레이션 우려를 말하지만 우리는 3.7%(1월기준)로 OECD 최상위권이다.



물가 안정이 없는 잡셰어링이 계속된다면 일전 가격은 그대로인채 용량은 속였던 모업체의 몰염치와 다를 바 없는 작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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