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은행들이 대기업에 돈을 빌려주지 않는 건 중소기업 대출비율 때문이다. 대기업에 대출을 하면 중소기업대출도 함께 늘려야 한다. 은행들은 대출 장사를 아예 안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대출을 할만한 중소기업이 없다는 하소연이다. 대출을 해도 될 곳은 돈이 필요없고, 돈이 필요한 곳은 불안해서 엄두가 안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은행을 성토한다. 금융이 이렇게 막히면 중소기업들은 다 죽는다고 아우성이다. 금융 인프라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경기 회복이 요원하며, 금융에 대한 정부의 보다 강력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부당국이 귀기울이는 건 아무래도 어려운 쪽의 목소리인 것 같다. 기업들은 은행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일러바친다. 당국자들도 과도한 대출 가이드는 문제가 있고 은행 건전성도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는 금융계의 건의를 이해는 한다. 그러나 고위층을 경유해 나오는 지시는 매번 은행에 압력을 가하는 쪽이다. 중소기업 대출을 독려하고 숫자도 수시로 체크한다. 결국 시장에서의 지위는 중소기업이 약자지만 정치적 입지는 훨씬 강한 셈이다.
지금까지 결과로 보면 중소기업 대출시장은 불안한 대치 상태를 보이고 있다. 정부와 대출수요자들은 은행을 몰아세우고 있고, 은행은 적당히 하는 척 하면서 이리 저리 도망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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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중소기업 대출’이라는 불편한 화두에 ‘은행이 망하거나, 은행장이 망하거나’라는 부제를 달아 정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직간접 압력을 받는 건 결국 은행장이다. 은행장이 중소기업 대출 늘리자고 마음 먹으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러다가는 은행이 망가지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정부와 기업의 요구를 모른체 하기도 어렵다. 결국 ‘자리’를 포기하거나 ‘은행’을 포기하는 양단간의 선택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역으로 보자면 정부가 도출해내야 할 중소기업 대출의 해법도 여기에 있다. 은행도 망하지 않고, 은행장도 망하지 않는 선택의 범위가 필요하다. 그게 안된다면 이렇게 불안하고 불편한 대치상태를 용인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