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대출'에 등 떠밀린 대기업 외화차입

더벨 이윤정 기자 2009.04.3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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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은행, 중기대출 부담에 대기업 신규 대출 외면"

이 기사는 04월29일(09:43)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외화조달이 그 동안 금융회사 중심의 대규모 해외 공모채 발행 위주였지만 최근에는 비금융 기업들이 해외사모채권을 발행하면서 외화차입 릴레이에 가세하고 있다.



달러가 아닌 원화가 필요한 이들 기업은 직접 해외에서 달러를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에 진출한 복수의 외국 은행에게 돈을 빌리는 일명 ‘클럽딜’을 이용하고 있다.

달러가 한 푼이라도 아쉬운 상황에서 누구에게 어떤 형태로 돈을 빌렸든 기업들의 외화차입 소식은 일단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외화차입이 자발적이 아닌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최근 클럽딜로 외화를 차입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국내은행에서 자금을 빌릴 수 없었기 때문에 외국 은행들에게 돈을 빌리게 된 것이라고 배경을 털어 놓았다. 주채권 은행에서 조차 대출을 피하고 있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이렇게 시중 은행들이 대기업들의 대출을 제한, 사실상 신규 대출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중소기업대출비율 때문이다.

중소기업 대출비율 제도는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금융기관의 대출증가액 중 일정비율 이상을 중소기업에 지원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대기업 대출을 늘리려면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대출 비율 때문에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도 함께 늘려야 한다.

결국 중소기업 대출에 부담을 느낀 시중 은행들이 대기업 대출을 포기하고 중소기업대출비율을 현 상태로 유지하는 카드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자산 건전성 때문에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대기업 대출도 중소기업 대출비율제도 때문에 같이 자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등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에 대한 대출은 바젤Ⅱ상 위험가중자산(RWA) 환산율이 크게 높아져 결국 은행의 BIS 비율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건전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중소기업대출비율제도를 준수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덧붙였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차별을 막고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활성화하고자 했던 제도가 오히려 중소기업과 대기업 모두의 발목을 잡는 제도가 돼 버렸다. 그리고 결국에는 기업들로 하여금 외국 은행들에게 손을 벌리도록 하는 상황까지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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