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외신 뒤집어보기

머니투데이 윤석민 국제경제 부장 2009.04.2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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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데스크를 맡고 있으면 울분나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국내 상황도 심상한데 나라밖에서 들려오는 이죽이는 소리들이 신경을 더 돋을 때가 많다. 뭐 이골이 난 필자 역시 그럴진대 정부 부처나 정책 담당자들의 심경은 어떨까 이해도 간다.

최근에는 국가 신용 등급 문제가 염장을 긁었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8일 디폴트 위기에 놓인 동유럽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신용 등급을 무더기로 하향 조정했다.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보다 깊은 수렁에 빠진 유럽으로서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한때 '늙은 유럽대륙의 젊은 피'로 강소국의 대명사가 된 아일랜드도 이날 신용이 강등됐다. 지난달말 무디스, S&P에 이어 3대 국제신용평가사의 나머지 하나인 피치도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이다.

헌데 부여된 등급이 눈에 들어왔다. AA+ 로 한 단계 하향. 그렇다면 직전까지도 최고등급인 AAA를 유지하고 있던 셈이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그동안 아일랜드의 위기 소식을 숱하게 접하고 전했던 당사자로서는 어안이 벙벙한 순간이었다.



'아일랜드 늘어나는 부채로 디폴트 직전' '금융위기는 제 2의 감자기근' 일자리 없는 젊은이들 해외로...인재 유출 심각, 멈춰선 유럽의 폭주 기관차, 올 -7.7% 성장 예상 등등이 얼핏 생각난 외신들의 헤드라인들이었다. 이 정도면 얼추 국가 부도사태 직전으로 신용등급마저 정크수준 언저리에 머물러야 했다.

당연히 오버랩된 것은 지난 외환위기 당시 우리의 신용도 문제이다. 1997년 10월 단기외채 문제가 외신을 통해 불거지기 시작한후 6개월도 채 안돼 한국의 국가신용도는 투자부적격으로 떨어졌었다. 물론 우리 은행 및 기업들은 이에 훨씬 앞서 정크가 돼 신규 자금은 커녕 채무 롤 오버조차 못했다.

결국 '돈맥'이 꽉 막혀 국제통화기금(IMF)을 찾고 이후 외평채 발행시 높은 스프레드 부담을 온 국민이 내내 져야했다.


그렇다면 유럽국중 금융위기의 첫번 째 희생자이자 이미 IMF의 지원을 받은 아이슬란드의 신용등급은 현재 무엇일까?

답은 BBB(-)이다. 투자부적격 기준인 BB+로부터 겨우 한 뼘 차이지만 그래도 아직 '쓰레기' 수준이 아니다. 동유럽권중 라트비아정도가 이제 `겨우` 정크가 됐을 뿐이니 대한국인로서는 분하고 펄쩍 뛸 노릇이다.



논란이 많은 신용평가사들의 이중 잣대를 또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또다른 논란인 외신을 뒤집어보기 위해 펼친 사례들이다. 결국 외국 언론들도 자신들과 가까운 일에는 과민한 반응이라는 점이다. 반면 먼 남의 나라 일은 앞뒤 잴 필요없이 마구 써갈긴다.

누구든 기자를 시작하며 묻는 질문의 하나가 알 권리가 먼저인가, 국익이 우선인가이다. 지난 1991년 1차 걸프전 당시 종군기자로 참여하며 그 해답을 얻었다. 쿠웨이트 해방작전이 개시되던 날 미군의 에이브러햄탱크위에는 CNN 등 미국언론들이 카메라를 거치한 채 함께 국경을 돌파했다. 영국군은 특수방호복 차림의 BBC 카메라맨을 치프탱크위에 태웠다.

필자 등 한국기자들은 다국적군에 파견된 한국군의무대 호송대열에 편승해 쿠웨이트로 진군할 수 있었다. 반면 자위대 파병이 무산된 일본의 요미우리신문 친구는 안전문제로 국경 통과가 거부당한 채 멍하니 떠나는 대열을 바라만 보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한국 언론들은 해방된 쿠웨이트 현지의 분위기를 우리의 시각에서 전할 수 있었다. 반면 일본인들은 외신을 통해 그 소식을 접해야 했다. 아마 한국 언론 사상 일본 언론을 누른 것이 그때가 처음 아닌가 싶다. 일본이 그토록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주창하는 것도 이유있는 항변이다.



그러면서 당시 깨달은 것은 언론 역시 국익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품이라는 점이다. 걸프전이후 아랍국들이 CNN을 모델로 한 알자지라방송을 만든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유독 영국계 파이낸셜타임스가 '한국 때리기'에 앞서 보이는 것도 우리가 외신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국계 언론에 젖어있는 탓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 뉴욕타임스 등을 늘상 대하다보니 유럽계의 독특한 시각이 때론 신선하고 도드라져 보인다.

때문에 그들 나름의 잣대를 가진 외신을 전부 새겨들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동안의 경험에 의한 결론이다. 진심어린 고언은 귀담아 듣되 비아냥은 한 귀로 흘려보내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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