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코'가 되어가는 사람들

이경숙,황국상 기자 2009.04.16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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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세상에 사는 우리]<5-1>내 몸과 지구를 살리는 식탁

안준상 사회연대은행 홍보팀장(37)은 회식 때 삼겹살을 입에 넣으면 일주일 동안 아플 각오를 한다.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으로 가려움증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10여 년째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안 팀장은 집에서는 반드시 유기농으로 식탁을 차려 먹는다.

국내에 '페스코(Pesco)' 즉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공장식 축산을 하지 않는 유기축산 고기와 유기농 음식만 찾는다.



최근 가짜 삽겹살, 항생제가 과다하게 남은 육류, 천식치료제가 발견된 고기육수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이런 인구는 급증하고 있다.

◇"못 믿을 고기 먹느니 유기농ㆍ채식"=유기농 식재료를 판매하는 아이쿠프(ICOOP) 생협(www.icoop.or.kr)의 조합원수는 3월 기준으로 4만55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70% 늘었다. 이 생협의 '이달의 식단' 게시판에는 매일 약 1만5000명이 방문한다.



4년 전 문을 연 온라인카페 '한울벗 채식나라(cafe.naver.com/ululul)' 회원수는 1만8930명을 넘어섰다. '한국채식연합(www.vege.or.kr)' 회원은 6730여명으로 늘었다.

국내 채식주의자들은 19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강당에서 '채식 페스티벌 행사'를 연다. 이 자리에선 한약사, 생태운동가들이 '친환경 생활방식', '한방 채식주의'를 강연한다. 채식으로 만든 길거리 음식 페스티벌도 열린다.

이들이 유기농 혹은 채식 식탁을 차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몸이 아파서' '시중 음식을 못 믿어서' '환경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등등.


김현희 아이쿠프생협 홍보팀장은 "엄마들은 아토피나 알레르기 비염 등 후천성 질병과 식품 안전이 걱정스러워 유기농 식단에 관심을 보인다"며 "최근 신규가입자를 보면 대부분 아이를 둔 엄마들"이라고 전했다.

친환경쇼핑몰 이로운몰의 이승우 식품담당매니저는 "가짜 삼겹살, 식품첨가물을 넣은 우유 같은 문제가 터지면 유기농식품을 찾는 방문객이 늘어난다"며 "식품 성분부터 인증까지 꼼꼼히 챙기는 똑똑한 소비자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식단을 바꾸면 몸이 바뀐다. 2007년부터 풀무원과 '굿바이 아토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여성환경연대는 초등학교 급식 식단 중 쌀과 채소, 과일만 유기농으로 바꿔도 아토피 아동들의 증상이 나아진다는 결과를 얻었다.

여성환경연대는 개별 아토피 아동의 가정에 매달 30만 원 상당의 유기농 식자재를 공급했더니 아동 90%의 아토피 증상이 호전됐다고 보고했다.

↑여성환경연대가 운영하는 '굿바이 아토피' 프로그램에 참가한 아이들이 유기농업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여성환경연대↑여성환경연대가 운영하는 '굿바이 아토피' 프로그램에 참가한 아이들이 유기농업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여성환경연대


◇내 건강, 지구 건강 함께 챙기는 법=지구를 지키려는 신념으로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권현아 씨(24)는 지난해 어학연수하러 영국에 갔다가 세계 각국의 채식하는 친구들을 만난 후 '페스코'가 됐다.

"영국에선 친구들뿐 아니라 하숙집 주인아주머니도 채식을 했어요. '불편한진실' 같은 환경영화나 환경 관련 책을 읽으면서 일상에선 휴지, 샴푸를 많이 쓰는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됐어요."

2002년 경미한 아토피 때문에 채식을 시작한 정희정 기후변화센터 사무국장(37)은 채식이 내 몸의 건강뿐 아니라 세계 평화에까지 기여하는 것을 알게 됐다.

"옥수수 등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곡물을 가축에게 먹이면서 식량부족이 더 심각해졌고 이 때문에 세계 각지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불안해하면서까지 고기를 먹을 필요가 있을까요? 고기 섭취를 줄이면 걱정이 줄어듭니다. 지구 살리기뿐 아니라 내 건강을 위해 좋아요. 저도 만 7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고 있는데 몸은 더 좋아졌어요."

페스코들은 고기 섭취를 줄이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권씨는 "한국 음식의 기본이 채소라 채식하긴 쉽다"며 "그러나 채식만 하면 자칫 탄수화물 중독에 빠질 수도 있으니 단백질 보충을 위해 식단에 꼭 콩을 넣으라"라고 제안했다.

이해영 상지대 식품영약학과 교수는 "음식을 만들 때 멸치, 다시마, 표고버섯 등을 우려낸 다시국물을 만들어서 국과 찌개를 끓이면 충분히 균형 있고 맛있는 식탁을 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들이 쓰는 용어
△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 Vegetarian) : 육류는 먹지 않지만 생선, 유제품과 달걀은 먹는 사람.
△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Lacto-Ovo Vegetarian) : 생선도 먹지 않고 유제품과 달걀은 먹는 사람.
△ 락토 베지터리언(Lacto Vegetarian) : 동물성 식품은 유제품만 먹는 사람.
△ 오보 베지터리언(Ovo Vegetarian) : 동물성 식품은 달걀만 먹는 사람.
△ 베전(Vegan) : 동물성 식품 전체를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 가죽옷과 모피도 입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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