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 부인의 선물"

허필석 마이다스에셋 주식본부장 2009.03.2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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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인사이트]"국내 백화점, 와타나베 효과로 내수 부진 극복"

"와타나베 부인의 선물"


며칠 전 시내에 있는 모 백화점에 들렀다가 흔치 않은 광경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백화점 정문 입구에 서있는 일본어 안내판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옆에 있는 명품관 건물에 갔더니, 평소 점잖은 30~50대 쇼핑객들이 조용히 쇼핑하던 모습과는 달리 찢어진 청바지에 야구모자를 쓴 젊은이들이 삼사오오 몰려다녔다. 웬일인가 했더니, 그들은 모두 일본 젊은이들이었다.

최근 1년간 원화의 가치는 달러대비 지속 하락하여 50% 정도 평가절하된 반면, 일본 엔화는 달러 대비 강세를 지속함에 따라, 원/엔 환율은 1년전 대비 70% 가량 상승했다.



그 배경에는 단연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해 고수익 고위험을 추구하며 엔캐리(저금리의 엔화자금을 차입하여 여타지역에 투자하는 구조)를 통해 이머징 마켓으로 빠져나갔던 자금들이 안전자산으로 회귀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여기에 더해 미국 등 달러권 경제의 금융경색이 심해진 부분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엔화의 초강세로 인해 국내 소비경기의 회복은 아직 요원하다고 일반적으로 평가되는 상황 속에서도, 백화점 기업들의 최근 월별 실적은 소위 '와타나베 부인 효과' 등으로 견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원래 이 용어는 1980년대 중반 대일 무역적자가 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방 선진국들이 일본과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의 정책금리를 대폭 낮추도록 유도하고 엔화절상을 용인하게 함에 따라, 일본의 풍부한 잉여유동성이 전세계 각지의 부동산, 금융상품, 소비시장으로 흘러넘쳐 큰 손으로 군림하던 시절을 풍자한다. 하지만, 최근1년간의 엔화강세는, 일본 경제 펀드멘털의 개선이 수반된 것이라기 보다는 앞서 언급한 대로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의 국제간 자금이동이 큰 역할을 했다.

달러 역시, 이머징 마켓 통화 대비로는 강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어려운 미국의 경제여건과 아직 남아있는 2차 금융 위기의 불씨 등을 감안하면 이러한 달러의 강세흐름은 일견 쉽게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글로벌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는 2가지의 양극단의 경우에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어왔다.

요컨대, 전세계 경제가 지금과 같이 극심한 침체에 빠져 있거나, 반대로 초호황 국면에 있을 때 어김없이 달러는 강세흐름을 보여왔다. 이러한 양 극단이 아닌 중간의 경우는 약세를 보여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으로 현재의 금융 경색이 어느 정도 해소국면에 들어가고 실물경기도 회복 조짐이 보일 경우, 달러가치의 흐름에도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아울러, 금융 위기를 막기 위해 집행해온 천문학적 규모의 달러 통화 증발은 정확한 시기는 가늠하기 힘드나 결국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달러의 대체 투자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원자재, 금 등 실물상품의 수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세계화폐 체제가 금본위제를 버린 1971년 이후 지금까지 계속된 흐름이고 금융위기로 최근에 더욱 가속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또, 쑹홍빙(宋鴻兵)은 '화폐전쟁(Currency Wars)’을 통해, 통화팽창에 의존해온 자본주의 경제성장의 문제점을 꼬집음과 동시에 작금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세계경제에서의 '기축통화의 다변화’와 ‘금본위제의 부활’을 주장했다.



최근 주식시장의 상승을 놓고 '유동성 랠리'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원래 유동성 랠리는 실물경제 회복에 선행하는 속성을 가진다. 금리 인하와 통화팽창을 통해 넘쳐나는 대기자금이 다가올 인플레이션에 대비(hedge)하기 위해 1차적으로 상품시장과 부동산, 주식시장 등으로 유입된다. 2차적으로는 경기 회복과 함께 실물부문으로도 흘러 들어올 시점을 예의주시 해야겠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돈이 돌기 위한 선행조건이라 할 수 있는 각종 신용경색 지표들의 회복이 추세적으로 진행되는가 하는 점에 대한 체크가 필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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