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기준금리 왜 동결했나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2009.03.1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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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스태그플레이션 우려..유동성 함정도 경계

-경기침체 장기화에 대비해 '마지막 카드' 비축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하는 원/달러 환율 상승 요인
-금통위, 경기침체와 물가 우려 사이에서 고민 거듭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행진이 멈췄다. 4개월 동안 3.25%포인트 하락했던 기준금리는 12일 2.0%로 동결됐다.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번 결정에 대해 고민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악의 경기침체 속에서 물가가 들썩일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 게다가 '유동성 함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무시하기 힘들었다.

금통위는 추가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긍정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는 반면 물가불안 등 부작용이 생각보다 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동결로 '숨고르기 국면'을 갖는 한편 경기침체 장기화에 대비해 '마지막 카드(추가인하)'를 비축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성균기자<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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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성균기자



◇왜 동결했나= 원/달러 환율의 고공비행, 엔화 강세 등으로 물가상승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2005=100)는 지난달 전기 대비 0.7% 상승했다. 물가지수는 지난해 하반기 원/달러 환율의 하락에 따라 10월 -0.1%, 11월 0.3%, 12월 0%, 1월 0.1%로 안정세를 보였지만 2월에 크게 올랐다. 전년 동월 대비로도 2월에 4.1% 상승해 1월 3.7%보다 높았다.

하지만 경기침체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어 금통위의 결정을 어렵게 했다. 한은은 이날 배포한 '기준금리를 유지하게 된 배경'에서 "국내 경기는 내수와 수출 모두 감소세를 지속하면서 계속 위축되고 있다"며 "세계경제 침체 심화, 국제금융시장 불안 등으로 향후 성장의 하향위험도 매우 큰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소비자물가와 관련해 "환율 상승의 영향 등으로 오름세가 확대됐지만 경기부진에 따른 수요압력 약화가 상승세를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계속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말 외환당국의 개입 등으로 하락세를 보였던 원/달러 환율은 올들어 고삐 풀린 듯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지난 1월 2일 1321원을 기록했던 환율은 지난달말과 이달초 가파르게 상승해 이달 2일 1570.3원까지 오르며 1600원선을 위협했다. 최근 외환당국의 개입, 수급 개선 등으로 1470원대로 내려갔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태다.



한 금통위원은 "우리나라는 높은 수입 의존도 등으로 기대 인플레이션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며 "금리인하를 통한 효과보다 물가상승 등으로 인한 폐해가 클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글로벌 위기 지속, 구조조정 본격화 등으로 경기침체가 더욱 심화되는 가운데 물가마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을 경계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유동성 함정에 대한 우려도 동결 배경으로 꼽힌다. 유동성 함정은 기준금리 인하로 통화량을 늘려도 회사채 및 대출금리 등 시중금리가 움직이지 않아 금리 ·통화정책이 효력을 잃은 상태를 뜻한다.



양도성예금증서(CD), 기업어음(CP) 등 단기금리는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크게 낮아졌지만 회사채 금리 등 중장기 금리는 기대만큼 내려오지 않고 있다. 3년만기 AA- 회사채의 금리는 11일 현재 6.15%(유통수익률 기준)를 기록하고 있다. CD 2.45%, CP 3.14%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한은, 기준금리 왜 동결했나
◇향후 기준금리 어떻게= 이번 동결 이후 향후 기준금리 정책을 어떻게 펼칠지 관심사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한국의 기준금리가 1%대로 내려오면 유동성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미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또 원/달러 환율이 최근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어서 물가불안 우려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기준금리 인하는 통상 환율상승 쪽으로 작용한다. 한국 채권 등에 대한 투자 매력이 그만큼 줄어듦으로써 외국인의 이탈로 이어지기 때문. 우리나라 원화는 기축통화인 달러에 비해 금리정책에 따른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향후 한국이 제로금리로 가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 확대, 물가상승 조짐 등으로 추후 기준금리 인하 여력이 크게 낮아진 상태다. 추가인하를 하더라도 그 '한계선'이 1.5%대 안팎이라는 게 공론이다.



한은 관계자는 "금리정책은 선제 대응을 목표로 한다"며 "현재 유동성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해도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동결조치를 내린 뒤 추후 시장 반응과 여건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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