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에서 길을 잃은 '버핏'

머니투데이 홍혜영 기자 2009.03.1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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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에서 길을 잃은 '버핏'


'오마하의 현인'마저도 이제 자신감을 잃은 건가.

'가치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사진)은 9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가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평소 장기적 관점에서 낙관론을 유지해오며 정제된 언행을 구사해온 그로서는 이례적인 '막장' 발언이다. 그의 말 한마디에 이날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시장이 흔들렸다.

버핏은 이미 지난해부터 경제 위기에 일침을 가해왔다. 하지만 투자는 멈추지 않았다. 남들이 '이제 끝'이라고 느낄 때 더 큰 위기를 경고했지만 다들 '최악의 위기'라고 판단했을 때는 거꾸로 '주식 쇼핑'에 나섰던 그였다.



◇ "침체, 깊고 오래갈 것"= 1년 전인 지난해 4월. 당시에도 CNBC와의 인터뷰에서 버핏은 "더 심각하고 더 긴" 미국 경기 침체를 경고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경기 침체의 골이 더 길고 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5월에도 버핏은 "미국 경제는 위기의 긴 터널을 4분의 1도 지나지 못했다"고 밝혔다. 유럽 방문중이던 그는 "신용위기의 초창기 위기는 모기지를 차입한 사람 등에 한정됐지만 경제 전반으로 도미노처럼 확산되고 있다"면서 "베어스턴스 구제로 금융회사의 위기는 진화됐지만 경제 전반과 개개인에게 미치는 위기는 아직도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당시 미국 금융당국은 공식적으로 '침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버핏은 "미국은 이미 경기 침체에 있다"고 못박았다. 역시 현인다운 '혜안'이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이 "심각한 침체의 가능성은 낮아졌다"고 말한 반면 버핏은 "경기 침체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 것 보다 깊고 길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벼랑끝에서 길을 잃은 '버핏'
◇ 남들 패닉 때 '주워담기'= 지난해 여름, 버핏은 행동에 나섰다. '이젠 정말 바닥'이라고 판단, 투자에 적극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주가가 많이 하락한 틈을 타 인수·합병(M&A)에 박차를 가하기도 했다.

버크셔해서웨이는 2007년 10월 이후 1년이 채 못돼 8개 회사를 인수했다. 버핏은 이어 은행지주회사로 변신하는 골드만삭스에 투자를 전격 결정했다. 그의 골드만삭스 투자는 시장을 크게 뒤흔들었다. 월가에는 순식간 생기가 돌았다.


버핏은 "골드만삭스는 특별한 금융기관"이라며 "전 세계에 독보적인 영업망을 갖췄고 훌륭한 경영 능력, 재무 구조, 자금 조달력 등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그의 '쇼핑욕'은 왕성했다. 10월에는 제너럴일렉트릭(GE) 투자를 결정했다. 당시 그는 "사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마치 노년을 위해 성욕을 아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버핏은 아예 같은 달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탐욕스러울 때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지라"면서 주식 매수를 조언했다.

◇ 버핏도 어쩔 수 없는 지금은…= 버핏이 이후 세간의 조명을 다시 받은 시점은 지난달 버크셔해서웨이 실적 발표 당시이다.

그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버핏은 "미국인들이 현 경제 상황을 두려워하면서 소비 상황을 바꾸고 있다"며 "버크셔 자회사 영업 실적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악조건을 헤쳐 나가는 달인의 모습보다는 상황적 현실에 압도된 듯한 나약함이 엿보였다.



2월 28일 주주에게 보낸 서한에서는 자신도 멍청한 짓을 두 가지했다고 고백했다. 유가하락을 내다보지 못한 것과 아일랜드 은행 매입 등 두 가지 실수였다고 말했지만 기실 투자 실패는 더 많았다. 버핏이 운영하는 버크셔는 지난해 순자산 가치가 115억 달러 줄어들면서 44년만에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그 역시 깊고 길어진 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시장내 예측 불허의 불가측성은 더 커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는 벼랑 발언과 함께 "경제상황이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케이스에 매우 근접했다"고 말했으나 즐겨 덧붙이던 주식 관련 발언은 자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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