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등이 조선사 탓이라고?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김지산 기자 2009.03.0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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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주 취소 땐 선물환 매도 청산위해 선물환 매수 불가피
- 그러나 발주 취소 땐 계약금 20% 날려..쉽지 않아
- 인도 연기 땐 선물환 매도 계약 연장하면 돼

조선사들이 최근 환율 불안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선박 발주가 취소되거나 선박 인도 시점이 연기될 경우 조선사들이 미리 팔아둔 달러화를 되사들일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선·해운업계의 관행상 발주 취소가 쉽지 않고 인도 연기의 경우에도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5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7원 오른 1568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8월말 1089원에서 6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무려 44% 뛰어올랐다.



외환시장 일각에서는 조선사의 발주 취소에 따른 선물환 매도 청산 가능성이 환율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

대개 조선사들은 계약 이후 환율이 떨어질 가능성에 대비해 계약 시점에 은행과 선물환 매도 계약을 맺는다. 선물환이란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미래 정해진 시점에 일정 금액의 외화를 일정 환율로 사고 팔 수 있는 계약을 말한다.

문제는 발주 계약이 취소됐을 경우다. 이 때 조선사는 선물환 매도분 청산을 위해 선물환을 사들여야 하는데 이는 환율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그리스의 해운선사인 마마라스로부터 각각 1억 달러 어치 이상의 케이프사이즈 벌크선 2척에 대해 발주 취소 요청을 받았다. 삼성중공업도 이스라엘 해운선사인 짐 인터그레이티드 해운과 컨테이너선 8척에 대해 계약 변경을 논의 중이다.

현재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 잔액은 2000억달러. 최근 대우증권은 이 가운데 지난해 이후 발주된 915억달러 어치가 발주 취소 위험을 안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실제로 조선사와 해운사 사이의 계약 관행을 보면 발주 취소가 쉽지 않다. 통상 조선사들은 선박 건조 계약 때 대금을 20%씩 총 5차례에 걸쳐 나눠서 받기로 약속한다. 5차례란 △계약 체결 때 △후판을 자를 때 △블록을 도크에 올릴 때
△선박을 도크에서 빼고 난 뒤 △최종 인도 등을 말한다.

계약과 동시에 선수금에 해당하는 20%가 조선사로 넘어가는 것이다. 선주 입장에서는 발주 취소와 동시에 계약금액의 20%를 날리는 셈이다. 또 계약 후 1년6개월∼2년 뒤에는 실제 선박 건조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 이후에 발주를 취소하게 되면 총 계약금액의 40%를 날려야 한다.

다만 지난해 하반기에는 선수금 비율이 10%에 불과한 '헤비테일' 방식의 선박 발주가 상당수 이뤄졌다는 것이 변수다. 전 세계적으로 시장금리가 높았기 때문에 선주들이 이자부담을 고려해 선수금 비중이 낮은 계약 형태를 원했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는 이미 경제위기가 가시화되고 있는 국면이었다는 점에서 지금와서 발주 취소를 요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현재로선 조선사들을 상대로 발주 취소 또는 인도 연기 요청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지난해 발주된 선박들은 앞으로도 2년 뒤에 받는 것들인데 그 시점에 해운경기가 무조건 나쁠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발주 취소 위험에 놓인 지난해 선박 수주 계약의 경우 선물환 매도 비중이 크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난해 수주한 선박 계약 중에는 시중은행의 외화유동성 부족 때문에 선물환 매도를 하지 못한 사례가 많다"며 "또 발주 취소 요청이 몰리는 벌크선 건조 계약은 주로 중소형 조선사들이 하는데 중소형사들은 선물환 매도 비중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선박 인도가 연기되는 경우에도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중도금·납입시점이 미뤄질 경우 조선사는 은행과 맺은 선물환 매도 계약을 연장하면 된다.



다만 조선사들이 올들어 단 한 건의 수주 실적도 올리지 못하면서 달러화 선수금 유입이 사라진 것은 환율 불안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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