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언론·출판..대한민국 사이코패스 '광풍'

머니투데이 정진우 기자 2009.02.0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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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근 기자ⓒ이명근 기자


한국 사회에 사이코패스 광풍이 불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계 등에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이나 조직을 사이코패스라 칭하며 상대를 비난하고 있다.

서점에서는 사이코패스를 다룬 책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평소 거의 팔리지 않는 책들이 하루에만 수 백 권씩 나가고 있는 것.



전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준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의 범인 강호순이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밝혀진 이후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이다.

최근 정치권에선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사이코패스 공방의 포문을 열었다. 전 의원은 지난달 30일 본인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신성한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해머 질을 하고, 동료의원의 명패를 내던지고 그것도 모자라 짓밟기까지 하는 '사이코패스 정치인'들, 무엇이 옳은 것인지 잘 알면서도 자신이 하는 행동과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이코패스'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지난해 말 국회 폭력사건과 관련, 민주당과 민노당 등 야권을 싸잡아 비난한 셈이다. 다음날인 1월31일 민주당이 발끈했다. 이재명 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국민에게 고통을 가하면서도 뻔뻔스럽게 국익과 경제를 이야기하는 전여옥 의원이야말로 사이코패스다"고 주장했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도 전 의원을 비판하는 글을 진보신당 게시판에 올렸다. 진 교수는 "MB정권이야말로 사이코패스다"며 "강호순이 일곱 명을 희생시켰다면, MB 정권은 여섯 명을 희생시켰다"고 주장했다. 용산참사와 관련, 정부를 강호순에 빗대 비판한 셈이다.

언론계는 신문과 방송으로 나뉘어 사이코패스 공방을 벌였다. 지난 3일 중앙일보는 칼럼 '당신 곁에도 사이코패스가 있다'를 통해 방송사 노동조합 간부들을 사이코패스 감정 대상이라고 비난했다.


이 칼럼을 쓴 중앙일보 이훈범 기자는 "사이코패스들이 칼 든 흉악범의 모습보다 '양복 입은 독사'의 모습으로 더 많이 존재한다"며 "(방송사 노조가) 억대 연봉을 위협할 경쟁자를 막겠다고 불법 파업을 벌인 것에 불과하다"고 피력했다.

이에 대해 박성제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같은 날 오후 '어느 사이코패스 우두머리의 변명'이란 제목의 글을 미디어 오늘에 기고했다. 그는 "방송사를 갖고 싶어 하는 사주의 이익을 위해 논설위원들뿐 아니라 기자들마저 총대를 메야 하는 상황도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누가 봐도 악의적인 표현과 논리 비약을 동원해 동료 언론인들을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로 매도하는 건 결코 상식과 정도가 아닐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서점가에선 사이코패스 관련 책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진단명: 사이코패스'(로버트 D. 헤어, 바다출판사)는 지난주 주간 기준으로 평소보다 5배 이상 판매량이 늘었다.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로버트 D. 헤어, 랜덤하우스) 역시 평상시엔 거의 팔리지 않다가 현재는 하루에 100권 이상씩 나가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네티즌들이 사이코패스 테스트에 큰 관심을 보였다. 네티즌들은 각종 사이트에 올라온 이 테스트를 직접 해보며 자신은 몇 점이 나왔는지 체크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민수홍 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사이코패스 열풍은 우리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사건이나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며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조금 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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