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가자는 가보셨나요

윤석민 국제경제부 부장 2009.01.16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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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를 가봤나? 안 가봤으면 말도 하지 말라. 이건 전쟁도, 싸움도 아니다.

굳이 전쟁이라는 표현을 쓰고싶다면 이스라엘판 '범죄와의 전쟁'이다. 여기서 범죄자는 팔레스타인 하마스 세력이다.

하마스는 외부인에게는 기묘한 단체이다. 팔레스타인 민중 봉기(인티파다)가 한창이던 1987년 야마드 야신에 의해 창설된 하마스는 이스라엘과의 타협을 내세운 야세르 아라파트 중심의 파타 운동과는 달리 이름 그대로 '용기' 저항'을 내세우며 이슬람적 가치를 중시해왔다.
구조는 굳이 분리하자면 정치선전 전위인 정당과 무장세력으로 이원화돼 있다. 물론 정당은 공식 등록된 단체로서 합법적 선거를 통해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내 제 1당이다. 또 무장단체라고는 하지만 정규군 체제가 아닌 경무장정도 갖춘 자발적 자위조직 정도이다.



하마스의 정치적 위상이 급부상한 계기는 아라파트 사망을 전후해 권력 암투에 쌓인 파타세력의 부진 탓도 없지 않지만 기실 이스라엘의 폭압에 대한 반작용이 크다. 특히 둘로 갈라진 팔레스타인자치령중 하마스의 온상이 된 가자지구를 비교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가자는 한마디로 현대판 '게토'이다. 광주광역시(500km²)보다 작은 360km²크기에 160만명이 몰려 있다. 단연 인구밀도는 세계 최고이다. 인프라는 물론, 변변한 제조업 하나 없는 황무지와 다를 바 없다.



반면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강 서안쪽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수자원과 경작지가 있고 옛 성지를 찾는 순례객들로 인한 관광수입도 챙긴다. 가령 팔레스타인자치령내 베들레헴에서 장사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이 모두 기독교인이라고 둘러댄다. 물론 헤브론 등지에 위치한 정착촌내 정통유대인들과의 간헐적인 충돌은 있지만 대부분 이스라엘과의 평화 공존을 외치는 파타 지지자들이 대부분이다. 서안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순치됐다면 가자내 팔레스타인인들은 척박한 토양으로 갈수록 야수화하는 집단이다.

문제는 이로인한 가자지구의 철저한 고립이다. 높은 담장 넘어 외부로 드나들려면 삼엄한 이스라엘군의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잡일이지만 대부분 이스라엘내에 직장을 둔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은 아침, 저녁 몇 시간씩 기다려 검문소를 넘는다.
그나마 뭔 일이라도나면 몇 일씩 통행은 올스톱이다. 식품 등 실생활용품은 물론 모든 건자재, 부품 등의 반입이 중단된다. 가자지구내 불만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이때문에 격한 감정이 테러를 부르면 문은 또다시 꼭꼭 닫힌다. 그 악순환은 이어져왔다. 그래서 이제 국제사회는 누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조차 구분이 모호한 상황이 됐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마스 발본색원을 위한 대대적인 군사작전에 돌입했다. 고작 견착식 로켓포와 개인화기만을 지닌 상대를 향해 온갖 첨단무기로 중무장한 정규군이 공격을 퍼부으니 처음부터 상대가 안되는 게임이다. 더욱이 애초부터 민간인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과도한 무력 사용이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외면은 철저하다. 3세계권의 목소리가 센 유엔만이 이스라엘 비난결의안 채택 등 목소리를 높이지만 공허한 외침일뿐이다.

오히려 미국은 이스라엘 입장을 두둔하는 편이다. 미 상하 양원은 '테러와 싸우는'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서방언론들은 봉쇄시 식료품 보급을 위해 겨우 뚫어놓은 허술한 터널을 마치 북한 남침용 땅굴 버금가는 군사용시설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가자에 가보기나 했는지 참 한심하다.



또한 이스라엘의 이러한 강단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제거한 조지 부시 대통령 덕이기도 하다. 사담이 사라진후 반서방 아랍권을 결집시킬 리더도 없어졌다. 이집트 정도가 서둘러 평화 중재에 나섰지만 그 배경에는 난을 피해 자국 국경을 넘어올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걱정이 깔려 있다.

이제 이스라엘 공격으로 국제 유가가 걱정된다, 중동의 안정판이 흔들리다는 등의 우려는 쓸데없는 기우가 돼버렸다. 이 모두는 8년간 테러와의 전쟁에 힘써온 부시 대통령의 공이다. 지금 가자에서 울려퍼지는 포성은 퇴임하는 부시에게 바치는 예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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