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7원 널뛰기' 나라가 휘청

머니투데이 이새누리 기자, 권화순 기자 2008.12.30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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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에 웃고 운 2008년 1259원에 마감

- 고유가·리먼사태 등 영향 예상 깨고 급등
- 내년 2분기 이후 1200~1300원 안정전망

"외환위기 이후 가장 드라마틱한 한 해였습니다. 10년에 한번 올까말까한 장이었죠."

환율에 웃고 울던 격동의 2008년 외환시장을 마감한 30일 시중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무척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259.5원에 마감해 전날보다 3.5원 떨어지는 데 그쳤다. 하지만 지난해 말보다는 323.40원 급등했다. 3년 만에 네자릿수에 진입한 환율은 지난달 24일 1513원까지 치솟는 등 극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하루 변동폭은 한때 235원에 달하며 외환위기를 연상케 했다. 그 여파로 날마다 전쟁을 치른 외환 딜링룸은 이제 '평화'를 고대한다.
2008년 외환거래 마지막 날인 30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에 비해 3.5원 하락한 1259.5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올해 격전을 치른 딜러들은 새해 '평화'를 고대한다. /이명근 기자<br>
2008년 외환거래 마지막 날인 30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에 비해 3.5원 하락한 1259.5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올해 격전을 치른 딜러들은 새해 '평화'를 고대한다. /이명근 기자


막판 당국의 공격적인 개입 가능성으로 관심을 끈 이날 시장평균환율(MAR)은 1257.5원을 기록했다. 기업들은 1년 농사를 잘 짓고도 환율로 실적이 급변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MAR에 긴장했다. 특히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 거래나 외화대출이 많은 기업이 막판까지 가슴을 졸였다. 이들 역시 이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환율이 1500원대까지 치솟자 연말 적자기업이 속출할 거란 우울한 전망이 나온 터였다. 다행히 1250원대에 안착하면서 큰 부담은 덜었다는 분위기다. 키코 거래기업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환율이 1469원을 찍던 11월말 4조원을 웃돌던 키코 손실액은 상당폭 줄어들 전망이다.



은행권도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하나은행의 경우 태산LCD 관련 손실로 3분기에만 2507억원의 충당금을 쌓았다. 3분기 기준환율인 1187원보다 소폭 오르는데 그쳐 추가 충당금의 부담이 줄었다. 이에 따라 4분기 흑자전환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은행권 전반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의 추가 하락도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외화대출 등 위험가중 자산이 예상만큼 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다.

내년 상황은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블룸버그뉴스가 집계한 22개 해외 투자은행(IB)의 내년 원/달러 환율 전망치 평균은 △1분기 1431원 △2분기 1408원 △3분기 1354원 △4분기 1326원 등이다. 점진적인 하락전망은 일단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날 종가보다 낮지 않은데다 기관별로 큰 차이가 나 환율이 큰 폭으로 변동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4차례 고비=올 한해 출렁이는 환율에 온 나라가 울고 웃었다. 대부분 전문가는 연초만 해도 환율의 하향안정세를 점쳤지만 상황은 이와 정반대로 진행됐다. 예기치 못한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가 터지면서 글로벌 금융 '한파'가 몰아친 것이다. 신용경색이 지속되면서 은행권은 달러차입이 꽉 막히고 외화대출을 받은 기업도 대규모 평가손으로 휘청거렸다.

올해 원/달러 환율은 연중 최고치가 1513.00원(11월24일), 최저치가 935.80원(1월15일)이었다. 원/달러 환율은 올들어 4차례에 걸쳐 널뛰기를 했다. 우선 고유가로 경상수지 적자폭이 확대된 3월이 첫번째 고비였다.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경상수지 적자가 추세로 자리잡는 양상이었다. 이런 비관론은 고스란히 환율상승으로 이어졌다. 3월초 원/달러 환율은 947.2원을 기록하며 완만한 상승세를 보였다.
 
여기에 정부가 고환율 정책을 발표하면서 같은달 17일 1000원선을 돌파했다. 1000원선을 넘은 것은 2년2개월 만으로 이때부터 통화옵션 파생상품인 키코(KIKO) 거래 기업들의 피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2번째 고비는 9월에 찾아왔다. 리먼브러더스 파산이 계기였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후 영업일인 9월16일 환율이 1160원으로 치솟았다. 이를 시작으로 글로벌 신용경색이 심화되자 은행권의 달러차입이 사실상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같은날 키코 손실을 견디지 못한 태산LCD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때부터 금융권 일각에선 '제2외환위기'가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쏟아졌다. 키코 거래 중소기업의 부도설도 끊이지 않았다.

다급해진 정부는 은행권의 대외채무에 대한 보증과 함께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쏟아냈다. 10월30일 한·미 통화스와프도 전격 체결됐다. 이때가 3번째 변곡점이다. 이날 환율은 1250.0원을 기록, 직전 거래일에 비해 낙폭이 무려 177.0원에 달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일렀다. 금융위기가 실물경기 침체로 옮겨붙으면서 4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산업생산이 위축되고 수출물량도 크게 줄었다. 전세계적으로 마이너스 성장률이 점쳐지면서 11월20일엔 장중 1525원까지 치솟아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올해보다 낫다?=내년 환율 전망은 "올해보다는 낫다"로 요약된다. 결제수요가 탄탄해 단기적으로 소폭의 반등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현재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박상철 우리은행 딜러는 "레벨의 높고 낮음을 떠나 차트를 보면 9월 이후 1555원 이상까지 갔다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경제여건이 크게 개선되지 않던 10월 이후에도 이 정도 빠진 것은 나쁘지 않다고 풀이된다"고 말했다.



내년 평균환율은 낮게는 1000원대에서 1300원대까지로 올해만큼 급등락은 없고 3분기 이후엔 안정세를 찾을 것이라는 게 국내기관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조재성 신한금융공학센터 이코노미스트는 "기업 구조조정이 큰 타격 없이 처리되느냐, 자본수지가 얼마나 개선되느냐에 따라 2분기부터 외국인들이 우리 시장에 들어올 수 있다"며 "보통 1200~1300원으로 예상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장이 한발 앞서 움직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2분기부터 환율이 뚜렷한 안정세를 찾고 3분기에는 급격히 하락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조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하반기 빠른 경제회복 △경상수지 흑자 △경제회복에 따른 외국인 매수 △외화차입 여건 개선 등을 근거로 "내년 4분기에는 1000원선도 가능하다"고 예측했다.



통화가치가 경제부양 조건인 만큼 정부가 내년 성장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원화강세 정책을 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달러화의 약세도 내년 외환시장의 관전포인트다. 이번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기축통화 역할을 하며 강세를 유지하던 달러가 조금씩 힘을 잃을 것이라는 얘기다. 조 이코노미스트는 "통화가치는 펀더멘털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달러약세가 심해지면서 이머징통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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