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 뒤에 숨는 외국계 증권사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2008.11.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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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로 등장하는 반토막 리포트…대차거래 지원, 정말 없을까

외국계 증권사에 대한 시장 반발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JP모간과 하나금융지주 (61,600원 0.00%) 사이에 벌어진 다툼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JP모간에 대해 구두 경고를 함으로써 하나금융의 손을 들어줬다. JP모간의 하나금융에 대한 보고서에 대해 "문제 있다"는 유권 해석을 내린 셈이다.

외국계 증권사들은 잊을만 하면 '융단폭격식' 리포트를 내놓으며 국내 시장과 해당 종목에 충격을 주고 있다. 목표주가를 한꺼번에 대폭 낮추는 '반토막' 종목 리포트는 주로 시가총액 상위종목을 대상으로 삼고 있어 시장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유독 올들어 반토막 리포트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다.



시장에서는 외국계 증권사의 무책임한 태도를 문제삼고 있다. 반토막 리포트가 문제됐을 경우 외국계 증권사들은 예외없이 "애널리스트의 완벽한 독자판단일 뿐"이라며 발뺌하기 때문이다. 외국계 증권사로사 갖는 명망을 누리면서도 정작 문제가 불거졌을 때 "애널리스트 뒤에 숨어버리는 얄팍한 태도"를 보인다는 게 시장 평가다.

◇외국계 증권사, 왜 욕 먹나=외국계 증권사들은 올초부터 국내 종목에 대해 '파격적인' 리포트를 잇따라 내놓으며 시장 영향력을 키워왔다. 반토막 리포트가 반복되면서 외국인의 대차거래 지원을 위한 '지원 사격'이라는 의혹마저 나왔다.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하이닉스반도체 등에 대해 '대폭 하향' 리포트가 나왔고 그때마저 해당 종목 주가는 급락세를 보였다. 몇몇 사례의 경우 외국인의 대차거래 증가와 맞물려 대차거래 의혹을 증폭시켰다.

JP모간은 최근 국내 1위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의 주가를 무려 63%나 낮추는 리포트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 리포트는 미래에셋에 대한 종목 분석 리포트가 아니라 한국 시장 리스크에 대한 부정 평가서였다. 대규모 펀드런(펀드환매)가 발생할 수 있다며 불안감을 키웠다.

이번 하나금융에 대한 리포트의 경우 이중잣대가 논란의 핵심이다. 통상 '고정 이하 여신비율'을 무수익여신(NPN) 비율의 기준으로 삼는데, 유독 하나금융에 대해서는 '요주의 여신 이하 비율'로 확대했다는 것. 이럴 경우 하나금융의 자산건전성은 수치상 크게 나빠질 수밖에 없다. "악의적으로 폄하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리포트"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국내 한 대형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외국계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은 지나치게 '섹시하게' 보이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며 "비록 내부와 클라이언트(고객)을 위한 보고서라 하더라도 한꺼번에 목표주가를 반토막 내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종목 리포트는 해당 종목에 대한 투자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해당 종목의 현재 및 미래 가치, 실적, 재무건전성, 지배구조, 주가 상승 또는 하락 요인 등을 종합검토해 투자자에 판단재료를 제공한다. 한꺼번에 목표주가를 50% 이상 깍아내리는 리포트는 투자자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점에서 무책임한 태도라는 지적이다.



◇정말 독립적일까=반토막 리포트가 문제될 때마다 관련 외국계 증권사들은 "애널리스트 독자판단일 뿐 회사의 공식 견해는 아니다"고 해명하고 있다.

외국계 증권사는 국내 증권사에 비해 애널리스트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 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회사에서 애널리스트에 대해 어떤 가이드라인도 제시하고 있지 않다"며 "목표주가를 절반 이상 낮추는 것도 해당 애널리스트의 결정사항일 뿐"이라고 말했다.

과연 외국계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이 완벽하게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을까. 이는 대차거래 측면지원, 부당한 시장영향력 강화라는 의혹과 맞물린 문제다. 완벽하게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애널리스트 개인의 자의판단이나 오류로 한정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의혹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JP모간 측은 이에 대해 "애널리스트 고유 권한에 따라 종목 리포트를 작성하지만 한국과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교차 확인(크로스 체크)를 한다"며 "영업부서 등과 애널리스트 사이에는 (규정에 따라) 완벽한 방화벽(파이어월)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 사정은 꼭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국계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한국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은 리서치센터와 사측의 요구를 암묵적으로 따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반면 외국계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은 헤지펀드 등 글로벌 고객들의 끊임없는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어려움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물을 취급하는 애널리스트들은 주로 홍콩지사 소속이거나 홍콩지사로부터 정보를 얻고 있는데, 이때 편향된 정보와 시각을 제공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털어 놓았다. 경우에 따라 독립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국내 또다른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외국계 애널리스트들도 헤드 등으로부터 전달받은 정보나 시각을 단순전달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외국계 증권사는 그 명망에 비해 한국 종목에 대해 국내 증권사보다 종합 이해도가 대체로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외국계 증권사가 한국 시장에서 갖는 힘은 한국 시장과 종목에 대한 고급 평가 능력보다는 헤지펀드 등 글로벌 고객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나오는 것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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