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 잘못 쏘고도…'남탓'만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8.11.17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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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의 여의도 편지]

# '반구제기(反求諸己)'란 말이 있다. ' 맹자(孟子)'에 나오는 문구에서 유래됐다. "활을 쏘아서 적중하지 않더라도 나를 이긴 자를 원망하지 않고 돌이켜서 자신에게 그 원인을 찾을 따름입니다(發而不中 不怨勝己者 反求諸己而已).

한마디로 남 탓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란 얘기다. 매년초 새해맞이 사자성어를 뽑는 교수신문은 지난 2007년 '반구제기'를 택했다. 당시 대통령을 비롯 '남 탓'만 하는 분위기를 빗댄 것이다.



# 당시 대통령의 '남 탓'이 월등했다지만 '남 탓'의 본산지는 정치권이다. 사실 정치권은 '남 탓'과 '제 자랑'이 전부다. '자화자찬'과 '비난'만 있다.

최근 헌법재판소의 종합부동산세 일부 위헌 결정에 대한 정치권 반응도 다르지 않다. 우선 종부세 개정 반대 입장인 민주당 등 야당의 불만은 원색적이다. "한나라당은 종부세의 실질적 폐지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부자만을 위한 판결" 등이 그렇다.



"헌재에 사망선고가 내려진 날" "국민이 나서서 헌재를 심판할 때"(민주노동당) 등 '헌재 탓'도 적잖다.

# 집권 여당의 표정은 반대로 너무 밝다. 헌재의 결정이 있은 직후 기자들을 만난 당 인사들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오히려 표정 관리하는 것이 더 어려운 듯 했다. 그래도 반응은 '남 탓'이 주였다.

대변인 논평의 첫머리는 "노무현표 부동산 포퓰리즘의 벽 하나가 치워진 것"이었다. "세금 폭탄에서 해방" 등은 선거 때를 방불케 했다.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겠다"(이동관 대변인)는 청와대의 논평이 가장 객관적 반응이었다.


# 종부세에 대한 헌재의 결정 이후 씁쓸한 맛이 남는 것은 정치권의 이런 모습 탓이다. 자신들이 만든 법이 '불량' 판정을 받았는데도 마냥 좋단다.

물론 헌재의 위헌 결정이 곧 입법부의 잘못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간 헌재는 최후의 '심판자' 역할을 해왔다.

지난 10월 네 번째 판단을 한 간통죄 합헌, 동성동본 금혼 헌법불합치, 과외교습 금지 위헌 등이 좋은 예다. 시대 상황의 변화 속 헌법에 담긴 의미를 다시 알렸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다른 건도 있다. '신행정수도 이전 특별법'이나 '종부세법'이 그렇다. 대부분 가치가 아닌 입법 '기술'이 문제가 됐다. 그런데도 입법부의 자존심은 찾아볼 수 없다. 정치권 한 인사의 말대로 "×팔린 상황인데"도 '남 탓'만 하느라 바쁘다.

# 이 때문인지 정몽준 최고위원의 한마디가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종부세 위헌 결정 이후 후속조치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의에 그는 "자괴감"이란 단어로 답을 했다.

"헌재가 근래 위헌 심사한 안건이 600여건이라고 들었다. 이 많은 법안이 우리 정치인들이 만든 법안이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든다. 정치인의 한사람으로 국민들에게 송구스럽다. 환급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헌법적 가치와 현 사태의 심각성을 반성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 종부세 일부 위헌 결정 이후 처음 들어본 '반성'이다. 여권 내에서 "그 때(종부세법 국회 통과 때) 한나라당은 퇴장했다"는 면피성 발언은 있었어도 진지하게 고개를 숙인 것은 처음이다.

다만 정 최고위원만의 '고백'인 게 너무 아쉽다. 종부세안을 제출했던 정부(물론 정권이 바뀌었다지만)나 현 여당 모두 '반성'은 없다. 과거 집권세력도 마찬가지다. 입만 열면 '헌법기관'이라지만 다 말 뿐이다.

18대 첫 정기국회가 후반부로 접어들며 본격적인 법안 심사가 진행된다. 또 얼마나 활을 잘 못 쏠지…. 그래놓고 또 '남 탓'만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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