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입고 아껴먹고 '허리띠 졸라매는 증권맨'

강미선 전혜영 기자 2008.11.1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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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한파 속 증권가 풍경]옷 수선집·저가 커피가게 북적… 구내식당 이용↑

“기분이 나야 반들반들 구두도 닦지 않겠어요?”

경제 침체 속에 연말을 앞둔 11월, 금융의 중심지인 서울 여의도는 어느 곳보다 일찍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증권거래소 인근에서 15년째 구두수선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이달 들어 손님이 40%나 줄었다”며 푸념했다.

손님의 대부분이 정장을 점잖게 차려입는 증권맨들이어서 그동안 광택 주문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간간이 수선 일감만 들어올 뿐 광택 주문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집에서 (구두를) 닦고 다니는지, 만날 사람이 별로 없어 그러는지…. 고쳐달라는 신발들도 5~6년 된게 대부분이예요. IMF 때도 이 정도는 아녔는데."

손님들의 표정도 예전 같지 않다.



김씨는 “전에는 신발 고치는 동안 기다리면서 숨넘어가게 주식 얘기만 하던 양반들이 요즘은 한마디도 안해요.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저도 손님들 표정보면 말 걸기가 어렵다”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헌옷들이 쌓여있는 여의도의 한 의류수선집.↑헌옷들이 쌓여있는 여의도의 한 의류수선집.


반면 헌옷을 고쳐 입는 사람들로 여의도 의류 수선집은 붐비고 있다.

“헌옷도 5~6년 된 거면 말도 안해요. 10~20년 전 입던 옷들 갖고 와서 고쳐달라고 한다니깐요.”

여의도에서 17년째 의류수선집을 운영하는 조모씨는 요즘 수선 물량이 많아 평일 밤 늦게까지 일하고도 토·일요일에 나와 재봉틀을 돌린다.


그는 “웬만하면 고쳐서 입자는 알뜰한 사람들이 많다”며 “좋은 현상이긴 한데, 아주 오래된 옷들까지 맡기는 것 보면 다들 어렵기 어려운 모양”이라고 씁쓸해했다.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 등 증시에 찬바람이 불면서 외부 음식점 대신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증권맨도 급증했다.



여의도 한 대형 증권사 구내식당 매니저는 “이용고객이 최근 몇개월간 꾸준히 늘면서 연초 대비 15% 증가했다”며 “특히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맛있는 음식을 찾아 외부식당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올해는 가을로 접어들수록 구내식당 이용고객이 오히려 더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요즘 회사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전에는 거기서 식사를 안 하던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며 "간혹 저녁 약속을 잡아도 접대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고급 음식점에 가는 게 부담스러워 저렴한 데를 찾는다"고 전했다.

↑여의도역 인근에 새로 문을 연 저가형 커피전문점 메뉴판.↑여의도역 인근에 새로 문을 연 저가형 커피전문점 메뉴판.
스탁벅스, 커피빈 등 고가의 커피전문점이 즐비한 여의도에 저가형 가게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여의도역 바로 옆 꽃가게는 지난주 커피전문점으로 간판을 바꿨다. 주요 메뉴는 1800원짜리 커피. 4000~5000원대 커피를 파는 스타벅스에 비해 반이상 저렴하다.

이 곳 점원은 “가게 문을 연지 얼마 안됐지만 다른 데보다 가격이 싸다며 하루하루 찾는 손님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유관기관들도 연말에 집중되던 외부 행사를 잇달아 취소·축소하며 조용한 연말을 준비하고 있다.



증권업협회는 이달 예정돼 있던 창립 기념음악회와 리셉션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매년 창립기념일을 맞아 음악회를 열었던 증협은 오는 1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향을 초청, 기념 음악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최근 증권가의 침체된 분위기를 감안해 이를 취소키로 했다.

오는 25일 조선호텔에서 개최하려던 창립 55주년 기념 리셉션도 전격 취소했다.



증협 관계자는 "협회 통합을 앞둔 마지막 리셉션이라 특별히 장소도 호텔로 잡고, 준비에 만전을 기해왔으나 증권가 안팎의 상황을 감안해 일정을 수정했다"며 "본사 불스홀에서 조촐한 창립기념식으로 대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분위기가 뒤숭숭해 연말 사내 행사 일정을 못잡고 있다"며 "다만 우수고객 초청 등 고객 대상 행사만은 차질 없이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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