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클릭]산업은행의 신기루

머니투데이 이새누리 기자 2008.11.10 08:27
글자크기
얼마 전 산업은행 임원에게서 뼈있는 농담을 들었습니다. 두 딸을 둔 민유성 산업은행장이 최근 세번째 딸을 얻었다는 겁니다. 그 딸의 이름은 '민영화'. 웃어넘겼지만 임원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더군요. 산은 민영화가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절박함이 그대로 묻어나서였을까요.

산은 민영화의 결말이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신호는 정치권에서부터 감지됩니다. 산은 민영화법(산은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담당하는 정무위원회에선 이번 회기에 법안을 처리할 수 없다는 기류가 형성돼 가는 듯 합니다.



정부가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면 법안을 심사하는 소위원회로 넘겨진 뒤 정무위 전체회의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되는데요. 리먼 사태 이후 여당인 한나라당에서조차 시기를 미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지요.

야당은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법안만 통과시켜놓고 지분매각을 미루면 결국 제2의 우리은행이 될 거라는 논리지요. 게다가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한미 FTA라는 뜨거운 감자가 급부상해 민영화는 아예 논외가 된 모습입니다.



금융위원회는 같은 말만 되풀이합니다. 전광우 위원장은 대정부질문에서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민영화 틀을 마련하는 게 맞지만 시장 안정을 위해 (지분매각 등은) 시간적 여유를 갖고 실행에 옮긴다"는 요지로 답변했지요.

지금 민영화를 추진하기에 금융상황이 나쁜 건 사실입니다. 지분을 내놔도 '떨이'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지요. 대신 정부는 1조원을 출자해 산은의 정책금융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향후 시중은행의 후순위채를 매입하기 위한 조치로 알려집니다.

딜레마는 여기서 일어납니다. 정책금융에 돈을 더 쏟으면서 민영화의 틀은 만들어놓자는 논리에 수긍할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요. 결국 민영화는 오롯한 법안이기보다 금융환경에 좌우지되는 '파생법안'이 된 듯 합니다. 민 행장도 겉으론 정부와 같은 목소리를 내지만 속으론 벙어리 냉가슴이라는 건 짐작 가능한 대목이지요.


민영화가 무산된 건 올해로 20년이 다 되어 간다고 합니다. 전 위원장도 "산은 민영화가 필요하다는 당위성은 여러 해째 인식하고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모습을 갖춘 민영화가 올해에도 신기루로만 끝날 거란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