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불황이긴 '사무라이 해법'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2008.11.0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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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함께 쓰는 우산' (2) 일본 금융에서 배운다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중소기업은 경기침체에 따른 경영실적 악화에 유동성 부족까지 겹쳐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욱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은행 역시 금융시장 불안이 지속되면서 순익이 급감하는 등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중소기업 지원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은행과 중소기업이 '윈윈'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소기업의 부실은 결국 고스란히 은행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는 탓이다. 따라서 일본이 10년간 장기불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은행, 중소기업이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1980년대 후반 형성된 거품이 붕괴되자 일본경제는 1990년대 장기 침체기에 돌입했다. 수차례 단행된 금리인상이 주가폭락은 물론 부동산가치 하락으로 이어진 탓이다. 1995년과 1996년을 빼곤 1% 수준을 밑도는 실질경제성장률을 기록할 정도였다.

소비가 급격히 위축됐고, 타개책으로 저금리정책을 지속했지만 기업들의 투자활성화로 연결되지 못한 채 개인소비가 줄어드는 부작용만 낳았다. 부실채권 처리가 지연되자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은행권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에 자금지원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자금회수가 보편화되면서 경제가 더욱 위축됐다.



일본식 경영시스템이 한계에 봉착하자 일본기업들은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계열을 파괴하고, 경쟁사업을 통폐합했다. 거품기간에 과도히 증가한 채무 조정 압박이 거세지자 자금조달 경로도 은행에서 직접금융시장으로 바꿨다.

은행들은 결국 2000년대 들어 1980년대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한 '주거래은행제도'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대신 기존 담보 관행에서 벗어나 무담보·무보증 상품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현금흐름 중심의 여신으로 영업방식을 선회했다. 더불어 협조융자(신디케이트론) 구조화금융(스트럭처드파이낸스)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등 시장형 간접금융상품을 적극 도입했다.

중소기업에 접근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기존에는 대출시 재무제표와 객관적으로 산출되는 신용평점 등 정량적인 지표를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고객과 친밀한 관계를 장기적으로 유지해 고객정보를 축적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대출해주는 '릴레이션십뱅킹'(Relationship Banking)을 도입했다. 대형은행과 달리 중소·지역금융기관들이 부실채권 처리에 이 시스템을 적극 활용했다.


정부 역시 담보·보증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기업의 현금흐름을 중시하는 융자가 이뤄지도록 다양한 촉진책을 내놨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창구를 다양화하기 위해 각 금융기관이 증권화 등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유인책을 제시했다.

금융기관들은 촘촘한 신용리스크시스템을 구축했고, 이는 곧 심사업무의 고도화로 이어졌다. 대출·부실채권의 정확한 평가가 이뤄지자 시장거래가 활성화됐고, 은행의 부실채권 처리도 신속히 진행됐다.
 
은행들은 특히 모집형 CLO 등 시장형 간접상품 대상을 일반 중소기업으로 확대했다. 개별적으로 직접금융으로 조달이 곤란한 중소기업이 증권화 방법을 활용해 시장접근이 가능토록 길을 터준 것이다. 중소기업 금융관행의 의식전환이 이뤄지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본 역시 우리나라처럼 시장 중심의 금융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기업금융정책에서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초점을 맞춰 금융권에 릴레이션십뱅킹을 장려한다. 특히 부동산 담보 위주의 금융관행을 보인 은행들이 무담보·무보증상품을 적극 도입, 현금흐름 위주 금융으로 전환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중소기업에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국내 은행들이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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