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에 이은 'D'의 습격, 안전자산의 시대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2008.10.2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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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의 투데이]

'경기침체'우려가 예상보다 빨리 확대되며 전세계 증시가 맥을 못추고 쓰러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가? 워런 버핏 등 고수조차 지난해 10월 고점 대비 증시가 충분히 하락했다면서 이제는 사라고 독려하던 터에 투자자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신세이다.

새롭게 터져나온 악재도 없다. 수면아래 잠겨있던 빙산의 나머지 부분들이 하나둘씩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새삼스레 놀란 시장에서는 'R'(Recession, 경기침체)과 그에 따른 'D'(Deflation, 물가하락) 공포가 커지는 상황이다. 투자자들은 증시 투자를 극도로 꺼림과 동시에 미국 국채 등 선진국의 안전자산 매입에만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22일(현지시간)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이미 6600억달러를 상각한 금융권이 또 다시 크레딧디폴트스왑(CDS)와 연관돤 합성부채담보부증권(합성CDO)으로 2차 충격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다.

합성CDO 시장 규모는 1조2000억달러에 달하는데 이중 1조달러 이상이 부실에 처할 것이란 지적이다. 이는 2차 금융쇼크의 뇌관이 될 것이란 우려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3조달러의 유동성이 공급됐지만 앞으로 더 많은 유동성이 공급돼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전날 증시 폭락도 이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올 여름까지만 하더라도 인플레이션 우려를 불러일으켰던 상품 가격은 빠르게 약세로 전환했다. 완만한 하락세가 아닌 급락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디플레이션 공포를 낳고 있다.
연료 및 식품 가격 상승세로 고난을 겪던 소비자들에게 물가 하락 소식은 언뜻 희소식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디플레이션은 경제에 더욱 심각한 악재다. 경기침체가 그만큼 빠른 속도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날 19개 원자재로 구성된 로이터/제프리스 CRB 상품 지수는 전날보다 3.3% 폭락한 269.48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04년 9월 8일 이후 최저치다. CRB 상품지수는 7월 사상최고치에서 무려 41% 급락했다.

해운 물동량을 가늠해 경기의 선행 지표로 쓰이는 발틱건화물운임지수(BDI)도 6년래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BDI는 전날보다 5.5% 하락한 1221을 기록했다. 1만1793 수준이던 올 5월 20일에 비해 90% 폭락한 것이다.


기업실적에 대한 경고들도 지속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블룸버그는 현대차를 비롯한 한국과 일본의 자동차 업체들의 순익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가와 고이치 다이와SB증권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경제 악화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면서 "자동차 업체들이 경기악화로 실적 예상치를 삭감하도록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비단 자동차 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수출 업계로 확산되고 있다. 이미 글로벌 침체는 수요를 줄이고 있다. 이는 특히 수출 비중이 높은 아시아 국가들은 힘이 2배로 든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투자자들이 안전 자산으로 몰림에 따라 달러, 엔, 서구 선진국들의 국채는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대신 증시 특히 이머징 국가 증시는 폭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리보금리가 연 8일 하락하면서 단기자금시장 여건이 개선되고 있지만, 증시는 암울하다 못해 암전(블랙아웃)이다.

이날 MSCI 이머징 증시 지수는 3년래 최저치로 추락했고, 러시아 RTS지수는 7.2% 폭락했다. 브라질 보베스파 지수는 10.2% 폭락하며 2년래 최저치로 추락했다. 국가 부도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를 낳고 있는 아르헨티나 증시도 전날 10%에 이어 18% 폭락했다.

반대로 미국과 유럽 국채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국채 금리 하락) 10년만기 미국 재무부 채권 금리는 전날보다 11bp 떨어진 3.60%, 독일 10년만기 분드 금리는 전일대비 15bp 하락한 3.9%를 기록했다.

아시아 증시도 23일 개장에서 폭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저가 매수세를 입에 올리기 무섭다. 그리고 패닉을 지켜봐야만 하는 입장이 답답하다.

물론 달러, 엔, 미국 국채 등 안전자산이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폭락이 거듭되고 투자자들이 절망할 수록 좋은 투자 기회는 늘어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말 그대로 장기 가치 투자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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