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민 파문과 위기관리 메카니즘

더벨 조헌성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 2008.10.2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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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View]시장·고객 신뢰 확보 '우선' … 윤리·책임경영 '기본'

편집자주 자본시장 발전에 신용평가는 인프라와 같은 존재입니다. 서브프라임사태로 신용평가의 공정성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는 것도 신용평가의 중요성을 재차 일깨우는 사건입니다. 더벨은 신용평가를 포함해 크레딧시장의 전반을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각을 통해 분석합니다. 신용이슈 등 일련의 현상에 대해 폭넓은 이해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기사는 10월02일(11:28)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멜라민 분유’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중국 최대의 유가공업체인 싼루그룹이 생산한 분유를 비롯한 22개 업체의 분유에서 멜라민이 검출된 것이다. 멜라민을 투입한 이유는 분유의 단백질 함량을 높아 보이게 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파문은 중국에 그치지 않고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그 범위 역시 유제품뿐만 아니라 분유를 원료로 하는 과자류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유명 제과업체의 과자와 커피크림 등에서 멜라민이 검출돼 전국민을 충격에 빠지게 하고 있다. ‘생쥐머리 새우깡’, ‘칼날 참치통조림’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대형 식품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문제의 발단이 멜라민이 함유된 분유에 있다고 하더라도 해당기업 입장에서 원재료와 제조과정에 대한 관리소홀의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멜라민 분유에 대한 중국 당국의 공개가 이루어진 이후 무려 2주가 지나서야 국내 과자류에 멜라민이 함유됐음이 밝혀져 당국과 해당 기업의 허술한 관리체계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식품기업에 있어 위생 관련 사고는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대한 위기요소이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기업이 위생관리체계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품안전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사고발생 이후의 대응방식 또한 소극적이고 책임회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보다 적극적인 위기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어느 기업에게나 위기상황은 발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위기는 사전의 경고단계를 거치지만 어떤 경우에는 대비할 겨를도 없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치기도 한다. 그 강도 역시 다양하게 나타난다. 극단적으로 기업의 존폐를 위협하리만치 커다란 여파를 몰고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위기상황의 예방과 대응방안을 포괄하는 위기관리체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최근 불안정한 경제환경으로 적지 않은 기업이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위기관리의 바이블로 여겨지는 존슨앤존슨의 ‘타이레놀’ 사례를 살펴보면서 위기관리에 있어 기업윤리와 소비자 신뢰의 중요성에 대해 반추해보고자 한다.


1982년 가을 미국 시카고에서 타이레놀을 복용한 일곱명의 시민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건이 발생하자 존슨앤존슨은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기 전 단계임에도 타이레놀을 절대 먹지 말라는 홍보를 즉각적이고 대대적으로 펼쳤다. 또한 여론이나 정부의 압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1주일만에 시카고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의 타이레놀을 수거해 전량을 폐기 처분했다. 제품 수거와 폐기에 소요된 비용만 2억 5천만달러에 달했다.



사건의 원인이 누군가의 의도적인 독극물 주입에 의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존슨앤존슨은 공식적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존슨앤존슨의 대응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제품 포장을 이물질 주입이 불가능한 형태로 개선했다. 또한 독약 투여 행위에 대한 형량을 늘리고 조작방지 포장을 의무화하는 법률제정을 위한 로비 활동도 병행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대응의 결과 타이레놀의 판매는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회사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는 타이레놀 이외의 다른 제품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존슨앤존슨은 예전보다 더욱 확고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존슨앤존슨의 타이레놀 사건의 대응은 1943년에 제정된 ‘우리의 신조(Our Credo)’에 바탕을 두고 있다. 존슨앤존슨의 ‘우리의 신조’는 고객에 대한 책임, 직원에 대한 책임, 사회에 대한 책임, 주주에 대한 책임을 명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윤리강령이다.



그 순서에서 말해주듯이 고객에 대한 책임이 최우선이다. 많은 기업들이 주주 이익에 우선하는 것과 사뭇 다른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에 대규모 손실을 감내하면서까지 일사분란하고 적극적으로 또 투명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소비자로부터의 신뢰 회복과 함께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윤리경영이 화두에 오르면서 많은 기업들이 윤리강령을 제정하고 사회공헌활동을 강화하고는 있다. 그러나 본연의 기업활동에 있어 소비자를 비롯한 이해관계자와 Win-Win 하는 가치관이 정립돼 있는 경우는 드물어 보인다.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방식과 투명성 부재의 현실을 보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성장 일변도의 인식이 여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빌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는 늘 파산과 18개월의 거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 것은 위기에 대한 인식과 관리체계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위기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형식적인 위기관리시스템 구축과 임기응변식의 대응은 기업의 안정된 성장을 보장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 안정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뢰’ 라는 가치의 근간 위에 위기상황의 예방과 대응체계를 포괄하는 관리메카니즘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금융시장의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시장의 불안은 위기관리에 소홀했던 기업은 물론이거니와 멀쩡한 기업들에게까지 유동성 강화에 나서기를 강요하고 있다. 위기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비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9월 위기설’이 제기되었던 근본적인 원인이 신뢰 부재에서 비롯된 것임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또 다른 위기설이 제기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

소비자와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쌓는데는 왕도가 따로 없다. 고객과 사회에 대한 소명의식의 근간 위에 투명한 경영활동을 펼쳐갈 때 신뢰는 자연스럽게 쌓여갈 것이다. 금융소비자와 금융시장의 경우에도 말할 나위가 없다. 근본과 원칙이 강조돼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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