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달러 가뭄'에 시달리는 이유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권화순 기자 2008.10.1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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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신용경색이 원인… 외화대출 급증·자산확대 경쟁도 영향

국내 은행들은 왜 '달러가뭄'에 시달리게 됐을까.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외화차입 여건이 악화된 게 표면적인 이유라면 최근 수 년간 급격하게 불어난 외화대출이 진짜 '원인 제공자'란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지난 2001년 외화대출 관련 규제를 완화하자 저금리 '메리트'를 누리기 위해 기업들은 앞 다퉈 외화대출을 받았다. 자산경쟁에 나선 은행권도 이를 부추겼다. 이는 결국 '환율급등 → 외화대출 만기연장 → 은행권 외화 재차입 수요폭증' 으로 이어졌다.



◇외화대출 '부메랑'= 최근 수개월간 해외 자금 시장이 '꽁꽁' 얼어 붙었는데도 국내 금융기관들은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해외로 나갔다. 현지 기관 투자가들 사이에서 "서브프라임 사태로 모두 몸을 사리고 있는데 한국 금융회사는 왜 이렇게 (자금시장에) 자주 나오느냐"는 말이 돌 정도였다.

은행권이 신규 외화대출을 줄이고 있지만 환율급등 등으로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이 계속되고 있다. 막대한 외화대출금 회수가 어렵게 되자 은행들이 '외화차입 롤 오버'나 '재차입'에 나설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은행권의 외화대출은 2001년말 447억 달러에 그쳤으나 2005년말 498억달러 2006년말 619억달러로 급증했다. 이어 지난해 말 731억달러 였다가 올 6월말 현재는 889억달러로 불어난 상황이다.

◇외화대출 용도제한 '오락가락'= 외화대출이 급증하게 된 배경에는 정부의 규제 완화도 한 몫을 했다. 정부가 2001년 외화대출에 대한 용도 제한을 폐지하면서 기업들의 외화대출이 폭증했다. 외채 비율이 늘어나자 한국은행은 지난해 8월 말 해외사용 실수요 목적과 제조업체의 국내시설자금으로 용도를 제한했다. 기존 운전자금 대출에 대해선 만기 연장을 금지했다.

그러나 기업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올해 1월 비제조업체의 국내 시설자금 외화대출을 허용하고 3월엔 운전자금용 외화대출 상환 기한을 한시적으로 연장해줬다. 결국 외화대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운전자금의 만기 연장 신청이 이어졌고, 이는 고스란히 은행권의 외화유동성 압박 요인으로 돌아왔다.


기업들은 환차익과 저금리 메리트를 누리려 외화대출에 적극적이었다. 엔화와 달러 대출의 금리가 연 2~3%대로 원화 대출에 비해 많게 5%포인트 이상 낮아서다. 여기에 장기간 환율이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환차익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덩치경쟁도 '화' 불러= 은행들의 자산 확대 경쟁도 외화유동성 압박에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국내 은행들은 풍부한 해외유동성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저리로 외화자금을 조달해 일부 원화로 바꿔 대출재원으로 활용했다. 넘치는 해외자금을 들여와 '박리다매'식 대출경쟁에 나선 결과, 주택담보대출 등 일부 은행들의 대출상품의 금리는 역마진 상태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올 들어서도 은행들의 덩치 불리기는 계속됐다. 국민은행 (0원 %)의 총자산은 지난 6월말 현재 258조원으로 올 들어 25조9000억원(11.1%) 늘어났다. 신한은행의 총자산도 229조원으로 같은 기간 21조원(10.1%) 증가했다. 우리은행의 총자산은 236조원으로 17조원(7.8%), 하나은행도 147조5000억원으로 18조5000억원(14.3%) 각각 불어났다.

외환보유액을 풀어 외화유동성을 직접 공급해 달라는 은행들의 요구에 한은이 고심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자칫 모럴해저드 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은행들이 그동안 늘려 놓은 자산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추가로 대출할 자금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이번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앞으로 국내은행 간 자금시장을 개척하고 과도한 외화차입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해외차입에 의존하는 수신구조에서 벗어나 국내 은행 간 자금시장을 육성하고, 은행 여신의 건전성 관리 및 유동성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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