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시장] 멜라민의 식품법

송기호 전 식품의약품안전청 고문변호사 2008.10.1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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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시장] 멜라민의 식품법


최근에 일본을 다녀온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일본의 국제공항에서 일본 분유를 잔뜩 사서 한 짐 짊어지고 귀국하는 중국인 주부들을 많이 봤다고 한다. 중국의 멜라민 사태는 소비자 개개인이 세계화 속의 식품 안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준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중국 주부들은 왜 일본의 분유제품은 믿을까? 왜 한국에 와서 분유를 사가지는 않았을까?



나는 그 이유는 중국 주부들이 일본의 식품안전행정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주부들이 일본 분유를 대상으로 몸소 위생 검사를 실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일본 분유의 생산과 유통에서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일본의 푸드 시스템을 믿었던 것이다.

식품안전기본법이라는 공공재



얼마나 믿을 수 있는 푸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느냐가 그 사회의 경쟁력을 이루며 구성원의 행복 지수를 결정한다. 푸드 시스템의 신뢰성은 하나의 공공재다.

물론 일본의 식품안전 행정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O-157 학교급식 사건, 광우병 사건, 우유 식중독 사건 등 적지 않은 문제가 드러났다. 그러나 일본의 푸드 시스템이 중국과 한국보다는 더 신뢰를 받게 된 것은 일본의 식품안전기본법 체제 덕택이다.

일본은 2001년 9월에 광우병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2002년 4월에 '식품안전행정에 관한 관계각료 회의'를 개최했다. 그리고 2003년 5월에 식품안전기본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과학자들로 일본 식품안전위원회를 구성했는데 7명의 위원은 일본국 총리대신이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위원의 3년 임기와 신분은 보장된다. 양원의 동의 없이는 해임할 수 없다.

일본의 농무성, 후생노동성 등 관계 부처가 식품 첨가물, 농약, 비료, 동물약품, 등 식품안전과 관련된 기준 등을 변경할 때에는 반드시 식품안전위원회의 건강영향평가 의견을 받아야 한다.



소비자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식품안전위원회의 회의 날자와 안건을 미리 인터넷(www.fsc.go.jp)을 통해 공지한다. 방청을 원하는 소비자는 누구라도 선착순 40명까지 식품안전위원회의 회의를 직접 방청할 수 있다. 그리고 7명의 위원이 식품안전위원회에 한 발언은 모두 인터넷을 통하여 공개된다.

한국 식품안전기본법의 모순

일본의 식품안전위원회가 권력과 업계로부터 독립된 과학적 영향 평가 조직을 보장하고 관련 정보를 철저히 신속하게 공개하도록 한 것은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다. 소비자야말로 식품행정의 최고 고객이다.



이 점에서 올 6월에 제정된 한국의 식품안전기본법은 많이 부족하다. 일본의 식품안전위원회에 해당하는 식품안전정책위원회가 권력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않다. 아예 위원장이 국무총리고 관계 부처 장관들 8명이 당연직 위원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독립적이고 과학적인 건강영향평가가 나올 수 없다. 위원회 회의에 대한 공개 조항도 없다. 결국 식품안전행정은 관료주의의 포로가 돼 있다.

이런 법과 행정으로는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정부가 식품법 위반자를 엄벌하겠다고 나선들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엄벌주의는 이미 1969년의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에서부터 실패한 정책이다.



식품안전은 형벌로 보장받을 수 없다. 권력과 업계로부터 독립된 소비자 중심 조직이 기능해야 한다.

한국이 제대로 된 식품법 없이 이렇게 허송세월하다간 자칫 일본 공항에서 일본 분유를 사재기하는 한국 주부들을 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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