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마음을 읽어야 시장을 얻는다

머니위크 이정흔 기자 2008.10.21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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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고령화시대 재테크 대박을 찾아라/소비패턴

머리 희끗희끗한 60대의 중년 노부부가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있다. 두 사람의 눈길이 고정된 곳은 할머니의 손에 들려있는 조그만 기계. 바쁘게 손을 놀리는 할머니가 실수를 한듯 주춤거리자 아니나 다를까 기다렸다는 듯한 할아버지의 타박이 이어진다.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해?”



“아 그럼 당신이 직접 해보든가. 여기 최고기록도 내가 세웠는데.”

“무슨 소리야, 이리 내봐. 내 직접 솜씨를 보여주지.”



“아니, 넘겨줄 때 넘겨주더라도 이번 판은 끝내야지 않겠수?”

마치 어린아이들이 서로 장난감을 갖겠다며 투닥거리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이 장면이 ‘닌텐도 DS’ 게임기의 TV 광고라면 믿을 수 있을까? 코미디 프로그램이 아닌 다음에야 점잖기만한 노부부가 애들이나 갖고 노는 ‘게임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게 말이나 될법한 얘기냐고? 물론 말이 된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고령화 추세가 지속된다고 가정했을 때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의 비중이 14.3%에 달하게 되는 ‘2018년 대한민국’에서라면 말이다.
노인의 마음을 읽어야 시장을 얻는다


◆노인의 마음을 읽어야 시장을 얻는다

‘노인들이 즐기는 닌텐도 게임’ ‘요실금 방지 속옷’ ‘3개월에 한번씩 청소해도 되는 변기’ ‘젊음을 유지해주는 할아버지 전용 마사지 팩’.


지난 2월 코트라에서 발표한 '일본 소비패턴 동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 거론된 일본의 유망 상품들이다. 이 상품들이 유망 상품으로 꼽힌 이유는 간단하다. 시간 많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너무나 필요한 품목들이기 때문.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변화는 10년 뒤인 2018년 우리의 모습을 짐작케 하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그 실마리를 좇아 미리 가 본 2018년의 대한민국은 어쩌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소비자들이 전혀 다른 품목에 열광하고 있는 완전히 새로운 소비시장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여가를 즐기기 위해 게임기를 구입하고, 3개월에 한번씩 청소를 해도 되는 변기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일손을 줄여 주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늘어난 노년기를 보다 젊게 살기 위해 보톡스와 같은 미용시장이 유망산업으로 등장하고, 외로운 노인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말벗이나 재택 서비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굳이 병원을 찾지 않아도 집에서 의사 선생님과 바로 연결이 가능한 전자진료시스템이 최고의 효자 선물이 되고, 자녀를 출가시킨 뒤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은 남은 인생을 함께 할 반려자로 호의호식을 누리며 애완시장의 성장을 이끈다.

쇼핑 방법도 크게 달라질지 모른다. 이미 일본에서는 대형마켓에 뒤로 밀려났던 동네슈퍼가 노년층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제2의 중흥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굳이 멀리 나가지 않더라도 손쉽게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데다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 소량구매가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러니 국내에서도 집 앞 슈퍼에 마실을 나갔다가 '생선 반토막'을 외치는 동네 할머니를 마주칠 날도 머지 않았다는 관측이다.

어쨌든 결론은 시간이 많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공략해야만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소비시장의 변화 또한 정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애완동물 증가, 신생아보다 많다

지난 2007년 '한일 고령화의 영향과 파급효과'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고령화사회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최숙희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미국과 일본만 보더라도 고령 인구의 증가가 소비 패턴은 물론 문화까지 변화시킨 사례가 한두가지가 아니다”며 “노년층을 더 이상 주변 세력이 아닌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주도 세력으로 봐야한다”고 강조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세대가 은퇴를 맞으며 본격적인 고령화시대에 접어든 미국의 경우 이미 ‘게임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보편적인 현상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2007년 미국 게임소프트협회에 따르면 미국 게이머들 중 25%는 50세 이상의 노인인구가 차지하고 있을 정도. 50대 이상이 가입할 수 있는 미국 퇴직자협회 홈페이지만 보더라도 비디오게임과 게임플레이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은 낯설게만 느껴지는 2018년 노인전용 게임기의 인기행진도 그저 상상 속의 일만은 아닌 것이다.



2005년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20%를 넘어서며 일찌감치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일본의 쇼핑 트렌드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여가 시간을 즐기기 위한 시간 소비형 취미, 오락. 닌텐도 게임은 물론 가정에서 기르는 애완동물이 증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일본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외로움을 덜기 위해 노년층을 중심으로 애완동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2006년에 늘어난 애완동물은 107만마리. 그해 신생아 수 106만명과 별반 차이가 없는 숫자였을 정도다.

홈케어폰과 로봇돌봄 서비스 등도 일본에서는 이미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미래시장 중 하나다. 인체감지센서를 통해 미리 설정해 놓은 시간 동안 움직임이 없을 경우 가족이나 주치의에게 바로 통보하는 비상전화인 홈케어폰은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늘어나는 노인 1인 가구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핵심을 파악해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라



최숙희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이처럼 인구 변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시장의 변화를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어떤 소비 품목이 뜨고 질지 예측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며 “변화의 핵심만 잘 파악하고 있다면 단순히 흐름에 따라가기 보다는 그 흐름을 주도하고 시장을 만들어 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07년 일본 시장을 강타한 ‘02써플리’라는 휴대용 산소캔 제품이다. 세븐일레븐이 발매한 이 상품은 출시 4개월여 만에 100만개가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대박을 기록했다. 이 제품은 상식적인 관점으로만 보자면 대중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먼 제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노인인구의 증가’라는 흐름을 정확하게 읽어냈기에 틈새 시장으로 만족했을 제품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최대 대중서적 출판업체인 펭귄도 마찬가지다. 펭귄은 베이비 부머들이 노년층에 접어들기 시작할 무렵, 출판하는 책의 크기를 과감하게 변경했다. 시력이 나빠진 베이비 부머를 위해 글자 크기를 키우고 행간을 조절하며 세로길이를 19mm가량 늘린 것이다. 고령화 현상과 더불어 변화를 선택한 그들은 노년층에 젊어든 베이비부머들을 주 고객층으로 확보하는 데 성공, 거뜬히 ‘대박’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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