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정관수술, 정력과 관계?

윤율로 연합비뇨기과 원장 2008.10.1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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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율로의 재미있는 性이야기

30대 중반의 한 남성이 영 꺼림직한 표정으로 정관절제술을 받으러 왔다. 몇 년 전부터 별러왔던 수술이지만, 정작 아내가 원치 않던 임신을 하고 나서야 뒤늦게 찾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사건이 터지고 난 뒤, 산부인과를 거쳐 부랴부랴 이곳까지 온 모양이다.

정관절제술을 포함, 피임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대표적으로 배란주기를 따져서 임신을 피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번 경우와 같이 실패 확률이 크다. 어떤 부부는 아이를 갖지 못해서 눈물겨운 노력을 다 해도 임신이 되지 않는데, 이처럼 잠시 방심하여 아이를 갖게 되는 사례도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각설하고,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불안감이나 공포는 자유로운 부부생활을 방해할 수 있다. 피임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피임과 관련해서 끊이지 않는 이슈 중 하나가 낙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낙태를 법으로 금하고 있다.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하자면 낙태란 일종의 살인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논제가 발생한다. 어느 시기부터 태아를 하나의 생명체로 인정해야 하는가? 기독교의 한 종파에서는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되는 순간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자궁 내 삽입장치인 루프를 사용하는 것도 금한다.

참고로 루프란 자궁 내막에 지속적인 염증상태를 유발시켜 수정된 난자가 착상하는 것을 방해하는 피임 기구다. 이런 엄격한 기준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미 착상이 된 후 임신 수개월 이 된 상태에서의 낙태란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인 것이다.

최근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맥케인의 러닝메이트인 알래스카 주지사 페일린이 화제다. 아이가 선천성기형인 몽고증(다운증후군)인줄 알면서도 낙태시키지 않고 출산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 고교생 신분에 임신을 한 큰 딸의 경우, 남자친구를 잘 설득하여 결혼시키고 아이를 낳도록 격려했다고 한다.


언론의 반응은 엇갈리지만, 낙태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좋은 반향 또한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자유분방한 국가 미국에서도 이처럼 낙태는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인 것이다.

다시 피임 이야기로 돌아가서 정관절제술에 대해서 살펴보자. 고환에서 정자가 생산되어 나오면 부고환을 통해서 나오면서 성숙되고 다시 정관을 통해 외부로 나오게 된다. 이 정관을 음낭 내에서 차단시켜 정자를 나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정관절제술이다.

국소마취로 간단히 음낭 내에 있는 정관을 잡아내어 수술하기 때문에 별 고통 없이 시행 받을 수 있고, 합병증도 그리 많지 않다. 필자는 공군 군의관시절 많은 전투기 조종사들의 정관절제술을 시행했고 대학병원 교수시절 많은 수의 의사들에게도 은혜(?)를 베풀었었다. 환자들이 수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질문을 해오면 이러한 풍부한 사례를 들어가며 환자들의 안심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가끔 정관을 자르지 말고 묶기만 해달라며 간곡하게 부탁을 하는 환자가 있다. 나중에 간단히 푸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정관 복원술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오해인 듯싶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정관을 묶기만 하고 잘라내지 않는다면 재수술시 수술부위를 찾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재개통이 될 확률이 조금이라도 커지게 된다.

정관수술시 우려되는 합병증으로는 수술로 인한 출혈이나 음낭혈종 등이 있다. 상처감염의 경우, 숙달된 전문의가 시술을 한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수술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정관의 재개통 문제에는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예기치 않는 임신이 될 수 있으니 당사자가 난감할 수 있다. 대개 0.5-1%정도의 확률로 발생하는데, 정상을 회복하려는 인체의 무의식적인 노력 결과로 보인다.

정자의 길을 막는다는 사실 때문에 시술 이후의 문제에 관하여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생산된 정자는 흡수력이 매우 왕성한 부고환에 흡수된다. 그 결과 정자에 대한 항체가 발생하여 수술 후 2년까지 혈중 최고치로 올라갔다가 서서히 감소하게 된다.

만약 정관 복원술을 받은 후 정자가 잘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임신이 안 되는 경우, 이 항체가 원인이라고 보면 된다. 원래 정자는 정계라고 하는 우리 신체의 면역체계에 노출되지 않는 신성한 지역에 존재하기 때문에 정자에 대한 항체는 정상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이렇게 특수한 상황이 변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항체는 임신에 관련된 부분 이외에는 별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참고로 절제술을 한지 10년 이후에 정관 복원술을 하는 경우에는, 정자가 잘 나와도 임신율이 50%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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