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사이 환율 두배…기러기 가족 "짐 쌀까?"

서정아 베이징 통신원 2008.10.15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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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China Report/치솟는 위안화

1년 사이 환율 두배…기러기 가족 "짐 쌀까?"


“설마 200원 넘겠어요? 좀 기다려봐요. 환율 떨어지면 그때 돈 바꿔서 학비 내는 게 나아요.”

1위안당 원화가 170원 즈음하던 2주 전 나누던 대화다. 1년치 학비를 미리 내는 경우가 많은 중국에서 한 한국인 학부모가 학교에 사정을 구해 1~2주 뒤에 학비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당시에도 환율이 갑작스럽게 올라 학비 만기를 지키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율은 사람들의 기대를 접고, 1위안당 200원을 훌쩍 넘어섰다. 그 학부모는 지금 학비를 15% 이상 더 내게 됐다.

지난 5개월간 위안화 대비 원화는 30% 이상 올랐다. 너무나 짧은 시간에 가파르게 오른 환율 탓에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은 생활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실제로 유학생이나 기러기 엄마 등 공부를 위해 베이징을 찾은 사람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귀국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1년 전에 비해 두배 오른 환율에다 중국의 체감 물가 자체가 20~30% 올라 유학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아이 셋을 두고 베이징에서 3년째 생활 중인 한 기러기 엄마는 “올해 초까지 한국에서 남편이 한달에 평균 500만원을 보내오면 집값, 학비 등 생활비를 모두 충당했으나 이제 1000만원을 보내야 할 지경”이라면서 “일단은 집을 한달 5000위안에서 4000위안 미만으로 옮긴 뒤 생활해보고, 그래도 힘들면 대학 다니는 큰 아이만 남겨두고 모두 귀국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식당 등 자영업을 하는 교민들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올림픽 때부터 비자문제로 한국인들이 많이 귀국해 줄어들었던 매출이 최근 한달 사이 급격하게 감소한 것. 일부에서는 판매가를 10% 정도 낮춰 보기도 하지만 손님을 끌어들기에는 역부족이다.

교민뿐 아니라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중국인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주로 한국인 상대로 맛사지 숍을 하는 한 중국인은 “요즘 한국 사람들 무슨 일이 있느냐. 손님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사실 이전에는 한국보다 물가가 저렴해 상대적으로 중국에서 여유를 즐겼던 한국인들은 이제 베이징의 모든 물가가 한국보다 비싸졌다며 생활방식을 바꾸고 있다. 손쉽게 타던 택시도 기본요금 10위안이 한국 돈으로 2000원을 넘어섰으니 교통카드로 4마오(80원)하는 버스를 타고 중국에 거주하는 주부들의 최대 기쁨이었던 파출부도 그만 두게 하고 있다. 집을 줄이고, 한국 공부를 위해 보내던 아이들 학원도 끊고, 외식을 줄인다. 유명한 짝퉁시장의 짝퉁 물건들도 한국의 제대로 된 물건보다 비싼 상황이 되버렸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한국에 부동산이나 주식을 투자해놓고 온 사람들의 가슴앓이는 더하다. L씨는 “중국 오기 전 아파트 값이 너무 올라 최대한도로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고 왔는데, 아파트 값은 떨어지고 대출이자는 오르고, 위안화는 올라 말 그대로 사면초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대의 상황들도 있다. 지난 국경절 연휴기간(9월30일부터 10월5일까지 1주일간) 베이징에서 인천이나 제주도로 간 비행기 안에는 중국 사람들만 가득했다고 한다. 한 중국인은 위안화를 한국 원화로 바꿔 “인천공항에서 그동안 갖고 싶었던 명품 가방과 시계를 사왔다”고 자랑하며 말했다. 이 기간동안 일 때문에 서울을 다녀온 직장인 S씨는 “공항 면세점에서 물건 사는 사람들은 거의 중국인들이고, 한국인들은 물건 구경만 하더라”고 전했다.



또 중국 현지법인으로 등록해 있는 한국 회사에 다니는 K씨는 위안화로 월급을 받아 요즘 위안화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 K씨는 위안화 상승도 거의 피크에 온 것 같다며 언제 한국 돈으로 바꿔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중국 주식투자로 마이너스 50% 넘게 손실을 기록한 J씨는 그나마 환율 덕분에 한국 돈으로 따지면 원금을 유지한 수준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환율의 급격한 변동이 베이징 내 최대 외국인 커뮤니티인 한국 교민사회를 얼마나 바꿔놓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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