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도 못뗀 산은 민영화 '녹록지 않은 길'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이새누리 기자 2008.10.0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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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유성 행장 "타이밍 조절 가능" 강만수 장관 이어 연기 가능성 시사

글로벌 금융위기로 산업은행 민영화에 빨간불이 켜졌다. 당초 올 정기국회에서 산업은행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내년 초 지주회사로 전환한다는 게 정부 복안이었다.

하지만 리먼브러더스 인수 실패로 촉발된 '시기조절론'이 힘을 얻는 형국이다. 급기야 민유성 산업은행장의 입에서 "지연될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시장상황 때문에…"=민 행장은 7일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에 참석해 "(산은의 완전) 민영화 기간이 4년으로 잡혀 있지만 시장 상황이 안좋으면 지분매각이 미뤄져서 지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전날 "지금사정이 안좋아 주식가격을 제대로 못받으니 타이밍은 조절할 수 있다"며 연기 가능성을 시사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거칠 것 없어 보이던던 산은 민영화는 9월 들어 산은의 리먼 인수 실패 소식이 전해지며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민영화의 궁극적 목표인 투자은행(IB) 모델이 과연 옳은 것이냐는 논란이 결국 시기조절론으로 이어졌다.



기획재정부 일각에서 반대입장을 감추지 않고 있고, 산은법 통과 여부를 결정지을 국회 정무위원회의 기류도 심상치 않다. 야당은 민영화가 졸속이라고 비난하고, 여당은 서둘러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수위만 달랐지 모두 정부가 제시한 민영화 방안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성남 민주당 의원은 "산은 민영화는 본말이 전도된 계획이기 때문에 절대 서둘러선 안된다"며 "중요한 건 정책금융기능인데 민영화라는 전제에 맞추다보니 KDF는 졸속이 된 것같다"고 지적했다.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은 "민영화가 차질없이 진행돼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정부안은 산은의 지주회사 및 IB화인데 시간적 여유와 상황을 감안하면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틀은 먼저 짜놔야"=산은 역시 민영화 틀을 만들어 놓되 시기는 정부가 선택할 수 있다며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국내외 금융시장 환경이 민영화 계획 수립 당시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 만큼 현실적인 선택을 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열중 산은 지주사설립준비단장은 "민간금융의 영역이 커지면서 시장마찰도 커져 산은의 기능을 쪼개야 한다는 얘기는 80년대 초반부터 있었다"며 "시기는 조절 가능하지만 민영화를 위한 플랫폼은 갖춰놓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민영화 실패시 정책을 수립한 정부의 신뢰도 하락은 물론 산은의 대외신인도 추락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를 감안해 주무부처인 금융위는 당초 계획대로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입법예고된대로 올해 안에 법안을 통과시키고 지주사로 전환한 뒤 이번 정권 임기 내에 민영화를 완료한다는 데서 변동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민영화 시기조절과 관계없이 대우조선해양 (32,750원 ▲1,150 +3.64%)하이닉스 (157,100원 ▲4,300 +2.81%) 등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의 매각작업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관계자는 "독자적으로 팔아야겠다고 전략적으로 결정한 사안인 만큼 민영화와 관계없다"며 "민영화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팔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증시 폭락에 따라 대우조선 주가가 급락하면서 인수후보들이 적어낸 가격이 예상치를 밑돌 경우 산은은 유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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