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글로벌 현상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가 유독 지독한 환율 홍역을 앓고 있다는 점에서 체감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대량실업과 살인적인 금리 등 환란의 고통스런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국민들은 최근의 징후에 '환란의 역습'이란 공포감에 떨 수 밖에 없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정감사 답변을 통해 "이미 실물경제에까지 위기가 시작되고 있다고 본다"며 현상황이 심각한 위기 국면임을 인정했다.
환헤지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의 피해는 환율이 급등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흑자기업의 줄 도산까지도 우려될 정도다. 수출 중소기업의 몰락은 경상수지 적자를 키우고, 대규모 실업 사태로 이어지게 돼 있다.
주가 급락과 금리 인상, 부동산 가격 하락에 물가 불안까지 겹쳐 국민들의 주머니가 갈수록 얇아지고 있는 점도 외환위기와 점차 닮아가고 있다. 외환위기 때 전 국민적인 금 모으기 운동을 벌였던 것처럼 최근에는 은행권을 중심으로 '장롱속 달러 모으기' 캠페인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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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연일 비상회의를 열면서 "10년 전 외환위기와는 다르다"며 국민들의 불안감을 진정시키느라 분주하다. 그러면서도 외환보유액 투입을 통한 은행 유동성 지원 등 긴급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는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이미 시행 중이다. 정부가 시중은행장들을 공개 소집해 "해외자산을 매각해서라도 달러를 구하라"고 옥죄는 게 단적인 예다.
정부는 각종 대책에도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외환위기 때 처럼 정부가 자금시장을 통제하는 고강도 조치까지 검토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매일 두차례식 최근 경제위기와 관련한 보고를 받는 등 청와대도 초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외화보유액과 외채 내역을 공개하면서까지 시중에 퍼져 있는 외화 유동성 우려를 불식시키는데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때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장은 정부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것도 10년 전 "외화유동성이 충분하다"는 정부의 거짓말에 속았던 뼈아픈 경험의 산물이다.
표한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과도한 변동성에 따른 두려움으로 패닉에 빠진 시장의 안정을 찾기 위해 정부의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며 "과도한 개입은 시장의 신뢰를 더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