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페일린보다는 브래들리

머니투데이 윤석민 국제경제부 부장 2008.09.12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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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민들에게 불편한 진실의 순간이 다가온다.
오는 11월 4일 예정된 44대 대통령 선거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는 일이다. 민주, 공화 양당 후보 모두 어려움에 직면한 경제 살리기와 변화를 역설하지만 기실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은 최초의 흑백대결 구도, 즉 인종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민들은 그동안 터부시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야 한다.

물론 공화당의 존 매케인이 당선된다면 72세 나이로 인해 초선으로서는 최고령(로널드 레이건은 73세에 재선) 대통령이 됐다는 정도가 새로울 뿐이다.
그러나 민주당 버락 오바마의 승리는 충격이 남다르다. 1776년 미국 건국이래 첫 흑인 대통령의 탄생이라는 초유의 사건이 된다.(케냐 국적의 흑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백인 어머니사이에 태어나 엄밀히 말해 혼혈 또는 유색인종인 그가 흑인으로 구별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좀 의아한 일이다. 흑인과 태국 어머니사이에 태어난 타이거 우즈도 흑인으로 분류되는 걸보면 미국 사회의 인식이 그 정도인가 보다) 국제적 파장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두 후보간의 우열은 현재 어느쪽의 우세라고 딱히 말하기 힘들 정도로 박빙이다. 양 당 정치가 잘 정착된 만큼 민주, 공화 모두 약 35%대 안팎의 일정한 지지율로 선거마다 접전을 보여왔다.

가장 최근 전국적인 조사에서는 매케인이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일 끝난 공화당 전당대회이후 실시된 갤럽및 유에스에이 투데이 조사에서는 매케인이 오바마를 제쳤다. 이전 열세에 놓였던 매케인 진영으로서는 '의미있는 표차'의 역전이다.



러닝메이트로 지명된 새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의 '깜짝 효과'가 먹혔다는 지적이다. 미국 보통엄마의 대명사격인 '하키맘' 페일린의 인기가 할아버지 매케인에게 등 돌렸던 여심을 쓸어담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진단하고 있다. 역전에 미소짓는 공화당마저 페일린 후광에 정작 대통령 후보인 매케인이 묻혀질까 걱정할 정도로 그 기세는 하늘을 찌른다.

반면 민주당은 이를 '반짝효과'로 폄하한다. 워싱턴 정가와 동떨어져 있던 페일린의 참신성이 대중에 어필하고 있지만 보수성향으로 '여자 체니'(부통령, 네오콘의 리더)로 불리는 실체가 드러나면 곧 꺼질 거품이라고 치부한다. 정치신인이라는 말은 검증이 안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오바마가 여전히 앞서 있다는 여론조사들도 많다. 특히 경합지를 제외한 각 주의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 선거인단 예상획득 대의원수에서 오바마의 리드는 두드러진다.


미국 선거판의 '족집게' 알란 아브라모비치 애머리대 교수는 이미 오바마의 낙승을 예고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변화의 시간' 모델에 비춰 오바마가 득표율 54.3%로, 45.7%에 그친 매케인을 제치고 승리를 담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 후보가 득표수에서는 앞서고 선거인단에서 밀려 정권을 내줬던 민주당으로서는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민주당이 승리를 예견하는 배경에는 8년 부시 정권에 대한 국민적 염증을 빼놓을 수 없다. 수렁에 빠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전쟁, 정든 집들이 차압당하는 서브프라임사태와 경기 둔화, 그리고 특히 흑인들에게는 3년전 허리케인 '카트리나' 당시 피부색으로 인해 소외됐다는 기억이 집권 공화당에 대한 반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가 무난히 승리할 것인가는 여전히 의문이다. 미국민이고, 현지 언론이고 드러내 놓고 밝히기는 꺼리지만 결국 인종의 문제가 승패를 가를 것이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번 선거는 '페일린 효과' 보다는 '브래들리 효과'가 지배한다고 본다. 이전 캘리포니아의 흑인 주지사 톰 브래들리가 인기와 각종 조사에서 월등히 앞섰지만 정작 선거에서는 진 것에 빗댄 이 말은 말과 행동이 다른 백인들의 '본심'이 여전히 미국 선거판을 좌우한다는 의미이다.
이로인해 필자도 '불행히' 매케인이 승리할 것이라고 베팅할 수 밖에 없다. 아직은 때가 안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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