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깃발'과 '불법'이 자연스러운 단체다. 그런 단체가 강력한 '투쟁'보다 조용한 '복무'를 선택했다. 왜일까.
이들은 단체에 의해 '동원'되지 않았고,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해 자발적으로 저항에 참가했다. 국민대책회의라는 대표 단체는 있었지만 '지휘본부'보다는 '병참부대' 성격에 가까웠다.
온라인 공간이 시각 중심의 '소통의 장'이었다면 오프라인 공간은 오감을 자극하는 '열기의 장'이었다. 집회에는 정치연설뿐만 아니라 힙합공연, 풍물패 공연 등 춤과 노래도 함께 어우러졌다.
온라인 동호회원들의 거리연주, 퍼포먼스 등 '광우병'은 구실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흥겨운 '축제의 장'이 연출됐다. 이러한 흥겨움이 없었다면 아마도 '72시간 릴레이 집회'라는 비상식적인 카니발은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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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정권과 일부 언론의 '불법집단' 낙인찍기에 적극적으로 맞서 스스로를 조직화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예비군부대가 질서유지에 나서고, 의료지원팀과 법률지원팀, 음료제공팀까지 꾸려졌다. 이러한 자발적 조직화는 집회가 폭력과 비폭력의 불안한 줄타기를 이어갈 때 비폭력으로 힘이 쏠리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과거 촛불과는 다른, 이같은 진화된 모습들이 인터넷에 그대로 생중계된 점도 '쇠고기 촛불'만의 차별성이다. 기자가 아닌 시민들이 노트북과 캠코더, 무선인터넷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자신이 활동하는 사이트에 글과 영상을 올렸다.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에서 촉발된 이 같은 '스트리트 저널리즘'은 해외 교포들의 촛불집회까지 유도해냈다. 이는 디지털 전자기기의 보급이 보편화되고, IT 기술이 크게 발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색다른 시위문화는 MB정권뿐만 아니라 진보진영까지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복무'를 강조한 것도 어쩌면 깃발과 쇠파이프라는 구태로 접근했다 판을 깰 수도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은 아닐까.
민주노총에서 집회 기획을 맡고 있는 김지호 문화국장은 "이른바 운동권 집회는 동원식, 지침하달식이지만 촛불집회는 자발적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직접 집회를 만들어간다"며 "우리도 어떻게 하면 교육과 토론, 소통을 일상 조직문화로 만들 수 있을 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