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강하거나 또는 독하거나

머니투데이 윤석민 부장 2008.07.30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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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버린 영국 총리는 회담을 마치고 귀환하는 비행기안에서도 히틀러 독일 총통의 평화 제스처를 믿었다. 그러나 누가보더라도 당시 히틀러는 이미 스페인 내전개입, 오스트리아 합병, 라인하르트 진주, 군비확장 등 끝모를 야심의 일단을 내보인 상황이었다.
히틀러의 팽창야욕 앞에 1차 세계대전 전후 평화를 지탱해주던 베르사이유 체제는 힘없이 무너지고 있었고 포성만 들리지 않을 뿐 전운은 유럽 전체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 챔버린은 끝까지 유화론을 고집하다 영국과 영국인, 나아가 전세계 모두가 호된 곤욕을 치루는 결과로 이어졌다.
챔버린의 이러한 행동은 두고두고 연구 대상이다. 많은 학자들은 냉엄한 국제정세속에서 이성적 판단이 초래한 대표적 이상주의적 행동이라고 예시한다. 1차 대전의 참화에서 겨우 벗어난 유럽에서 울리는 단 한 방의 총성도 공멸로 가는 신호탄과 다름없다는 판단이 근거이다. 때문에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도 안되고 일어날 수도 없다는 것이 상식적 판단이다. 챔버린은 그렇게 믿고자 했다는 분석이다.

고금의 전쟁사를 연구하는 전쟁학자들은 흔히 인류사를 꿰뚫어 모든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전쟁이 수반할 폐해와 인적 손실 등 전후사정을 살펴보면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됐지만 늘 인류와 함께 해왔다. 말을 바꾸면 국제사회는 이성적 판단보다는 ‘주먹이 더 가까운’ 생존 논리가 판치는 정글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쟁도 외교의 연장’이라는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의 말은 현 우리의 실정에서 은미해 볼 필요가 있다. 최후의 수단도 염두에 둬야한다는 지적이다. 대화로 뭐든 풀겠다는 전제가 붙는다면 북한과의 금강산 민간인 피격 사건도, 일본과의 독도 문제도 우리식의 해법은 요원하다.
국제사회의 '싸움 닭' 북한으로부터도 배울 점은 있다. 북핵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15년간 전개되는 미국과의 협상은 가치 판단만 유보하면 좋은 본보기이다. 내부 단속용, 잃을 것이 없는 벼랑 끝 외교라는 비판도 따르지만 북한은 늘 식량, 중유를 얻어내는 실리를 취했다. 일본 민간인 납치라는 파렴치 범죄를 저지르고도 일본에 당당한 북한의 자세는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난감할 때도 있다.

흔히 우리는 잃을 것이 많다고 강변한다. 대미, 대일 관계가 흔들리면 외국 투자는 썰물처럼 빠지고 국가신인도는 걷잡을 수없이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진다. 지레 겁부터 낸다면 참고 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속에도 꿋꿋한 우리 경제를 보며 한 번쯤 자신감도 가질 법하다고 생각한다. 정부 당국자들마다 위기라고 우는 소리를 내도 변함없던 우리의 국가신인도를 보며 얻은 용기이다. 금강산에서 총성이 울려도 무디스, S&P, 피치 등 국제신용평가사의 한국 보고서는 변함이 없었다. 한국의 경제 보고서에서 빼놓을 수없던 '북한 팩터(NK Factor)'가 어느새 사라졌다. 10년전 IMF위기 당시에도 뉴욕에서 진행되던 북미 미사일회담을 초조히 지켜봐야했던 필자로서는 격세지감의 사건이다. 그만큼 우리의 경제는 견실해졌다.
필요한 것은 '전쟁도 불사한다'는 국민적 함의이다. 역사는 전쟁을 예비한 나라가 평화를 지켰음을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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