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민영화 후퇴, 여론이 무서워서?

머니투데이 양영권 기자 2008.07.2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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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경쟁 조건이 갖춰진 공기업에 대해서만 민영화를 하고 기능이 유사한 기관을 통폐합할 때도 인력 감축을 최소화하겠다는 내용의 공기업 선진화 원칙을 발표했다. 정부가 여론 반발을 우려해 민영화 대상을 대폭 줄이고 구조조정 또한 강도를 조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출범 초기 이명박 정부는 전체 300여개 공공기관 가운데 88개에 대해 민영화를 적극적으로 검토했다. 민영화 대상 공기업에는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금융 공기업과 대우조선해양 등 공적자금 투입 회사, 철도공사와 주택공사 등 사회간접자본(SOC) 기관 등이 총 망라됐다. 한국가스공사와 지역난방공사 등 독점 에너지기업도 기업분할 등을 통해 시장 경쟁 체제를 갖춘 뒤 민영화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그러나 이번에 확정된 원칙에 따르면 민영화 대상 기업은 이미 확정된 산업은행 등 금융 공기업과 공적자금 투입회사, 공기업 자회사 등 극히 일부로 한정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가스공사와 같은 에너지 기업은 정부 출자를 확대해 대형화를 유도, 자원개발 역량을 키우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같은 민영화 대상 축소는 공기업 매각이 특정 자본에 특혜를 주고 대대적인 공공요금 인상을 불러일으킬 이어질 수 있다는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가 전기, 가스, 수도, 건강보험은 민영화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을 명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 분야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사태와 맞물려 '민영화 괴담'의 대상이 됐다. 건강보험의 경우 처음부터 민영화 대상으로 거론된 적이 없었음에도 '괴담'이 퍼져 정부가 여러 차례 해명에 나서야 했다.

정부가 공기업 선진화를 추진할 때 여론 수렴의 과정을 중시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장영철 기획재정부 공공기획국장은 "8월 중순부터 '특정 공기업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겠는가'라는 주제로 부처별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원칙적으로는 어떤 기업을 민영화할지도 토론회 등을 통해 여론을 들은 뒤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공기업 민영화 추진 때에는 고용 승계를, 공기업 통폐합 추진 때에는 인력 자연 감소를 원칙으로 내세운 것도 선진화 추진 과정에서 노사간의 불가피한 잡음을 사전에 막으려는 의도가 읽힌다.


게다가 정부의 '선(先) 지방 이전-후(後) 선진화' 방침으로 공기업 민영화는 정부 방침보다 더욱 더디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 이전이 확정된 공기업의 경우 혁신도시 건설이 완료된 2012년 이후에야 민영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는 현 정부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이다.

정부 관계자는 "민영화를 하고 나면 종전 주인(정부)이 지방 이전에 관여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해 지방 이전이 결정된 공기업은 사전에 민영화하기는 어렵다는 뜻을 시사했다.



또 통폐합 기관의 지방이전과 관련해서도 정부 관계자는 "기관이 통합되면 어느 기관 하나는 사라질 수 있는 있다"며 "이는 해당 지방자치단체,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등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흡수돼 사라지는 공기업이 이전하기로 한 혁신도시의 적지 않은 반발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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