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前회장, 집행유예 배경은

머니투데이 류철호 기자 2008.07.1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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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이른바 '삼성사건'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건희 前회장, 집행유예 배경은


법조계에 '원칙론자'로 정평이 나있는 민병훈 부장판사가 재판장을 맡은 데다 조준웅 특검이 이 전 회장에게 적용한 혐의가 가볍지 않다는 점에서 실형 선고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던 점을 감안할 때 예상치 못했던 결과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민병훈 부장판사)는 16일 이 전 회장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피고(이 전 회장)의 불법 정도가 징역형(실형)을 선고할 정도로 중하다고 볼 수 없는 사안이므로 피고에 대해 작량감경을 거쳐 형의 집행을 유예함이 옳다고 판단 된다"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앞서 지난 10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조준웅 특검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전 회장에게 징역 7년에 벌금 3500억 원을 구형했었다.



그렇다면 재판부가 이 전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이었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발행 의혹과 관련, 이 전 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아들인 이재용 전무가 에버랜드 지분을 넘겨받도록 하기 위해 기존주주들에게 인수권을 포기하도록 지시했다고 하더라도 배임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즉, 전환사채를 인수한 이 전무 등에게 경제적 이익을 줬다고 하더라도 이는 조세를 면탈하는 측면에서 조세법상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 기존주주의 부를 이전한 것도 계열사들의 배임은 되도 이 전 회장 등 개개인의 배임은 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더구나 인수권을 포기한 기존주주들이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인수권을 포기한 것으로 강제성에 의한 실권과는 성격이 다른 것으로 간주했다.

이는 재판부가 계열사들의 전환사채 인수 포기가 삼성그룹 구조본의 지시나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닌 자체적인 판단이었다고 본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의 경우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유무죄를 다툴 여지가 없는 것으로 결론지었으며 차명계좌 주식거래에 따른 양도소득세 포탈 부분도 양도소득세법 개정 이전 행위는 모두 무죄로 판결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이 선친인 고 이병철 회장이 관리하던 차명주식을 상속받아 재산증식 목적의 부정한 행위를 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으며 이 전 회장이 재산관리를 직접 하지 않은 점도 양형에 고려했다.

다만, 재판부는 차명계좌 주식거래에 따른 양도소득세 포탈 혐의 일부와 주식변동 미신고 부분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의 범죄행위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충분치 않고 특검이 제기한 공소내용과 실제 일어난 행위는 적용법리가 다른 사안으로 심판의 대상이 아니다"며 "그러나 피고가 양도소득의 귀속 주체로서 조세포탈의 최대 수혜자이고 최고 지휘감독자란 점에서 다른 피고인들보다는 무거운 처벌을 내린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처럼 재판부가 특검측이 제기한 공소내용 대부분을 '무죄' 또는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짓고 이 전 회장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이 저혈당과 폐수종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등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점도 형량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며 "이 전 회장이 그 동안 재판 과정에서 잘못을 크게 뉘우친 데다 기소 직후 '삼성특검'의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결단을 내린 것도 선처의 배경이 된 것으로 분석 된다"고 말했다.

실제 이 전 회장은 지난 1999년 림프종수종 수술을 받은 후 폐 기능에 문제가 발생,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아 왔으며 변호인단은 이번 재판 과정에서 이 전 회장의 진단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 전 회장은 '삼성사건'으로 기소된 직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 등 참모진들과 함께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한편 '삼성사건' 1심 재판부를 이끈 민 부장판사는 지난 2006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 재직 당시 '론스타 외환은행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4차례나 기각해 법원과 검찰의 갈등을 '촉발'시켰던 인물로 '소신파'란 정평이 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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